“중요한 것은‘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람들은 내 영화의 장르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슬픈데 웃기고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있어서 어떤 틀에 집어넣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영화는 웃기면서도 부끄럽고 슬프지만 한편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다. 인생이란 그런 뒤섞인 감정들이 공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인터뷰이 봉준호의 말, 김나희 인터뷰집,‘예술이라는 은하에서’, 2017년 교유서가 펴냄>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봉준호 자체가 곧 장르’라는 외신보도에 “가장 감격스럽고 듣고 싶었던 말”이라 화답했다.
봉준호라는 장르는 칸을 넘어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다. 지금 우리는 한 예술가가 특정 장르의 대가가 되는 것을 넘어 그 이름 자체가 새로운 장르로 호명되는 진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은하에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별들에게 꾸준히 말을 걸어온 인터뷰어 김나희는 정명훈·조성진 등의 음악가뿐 아니라 박찬욱·봉준호 등 영화계 거장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기록해왔다. 이 책에서 봉준호는 그 어떤 장르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자신의 영화를 슬며시 인생에 빗댄다.
그의 먼 선배인 찰리 채플린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말했는데 봉준호가 바라보는 인생들에는 또렷한 장르가 없거나 모든 장르가 뒤섞여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휴먼드라마를 찍고 싶어하고 누구는 액션이나 로맨스로 성공하고 싶어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생이 끔찍한 호러나 단서 하나 없는 추리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인생이란 봉준호의 영화처럼 ‘삑사리’와 농담과 재난과 희비극이 각자의 비율로 뒤섞여 있는 유일무이한 필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실패하기 쉬운 인생은 남의 장르에 나의 삶을 욱여넣는 것이다.
<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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