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지내던 스님의 부모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 스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후 장례는 잘 치렀느냐고 물었다. 그 스님은 출가한 수행자가 세속의 일에 얽매이기 싫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기대 밖의 대답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인데…’라는 마음이 동시에 교차했다.
사실 잘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 홀로 된 부모님을 모시고 절집에서 생활하는 스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대중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홀로된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어 모시고 사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스님의 부모님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다른 대중 모두가 스님의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초심자 시절엔 당연히 수행자는 세속과 거리를 두어야 하며 특히 혈육(血肉)간의 정(情)은 금기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出家)를 감행한 부처님은 성불(成佛)에 이르기까지 수행(修行)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그러나 성도(成道)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교화(敎化)하였고 아버지인 정반왕이 돌아가신 후에는 장례식에서 손수 아버지의 관을 들으셨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법문을 설하고자 도솔천으로 올라가 어머니를 위해 법을 설하셨다는 기록이 경전에 남아있다.
출가자는 중생의 생로병사라 하는 제한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출가해 수행을 한다. 또한 불교에서 출가자에게 효(孝)는 가치가 없는 도덕적인 덕목(德目)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효도를 하기 위함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연이 깊고 소중한 부모님께 가장 가치 있는 효는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부모님께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드리는 이상의 큰 효는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세속에서도 고시(考試)같은 어려운 공부를 할 적에는 될수록 잡다한 인연을 피하고 합격할 때까지는 다소 섭섭하게 여겨질지라도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번잡한 일은 피하곤 한다. 그렇듯이 출가수행자도 성불이라 하는 지상과제를 이루기 위해 세속의 인연을 잠시 멀리 하는 것이지,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가장 가까운 인연인 부모님을 외면하고서 어찌 새삼스럽게 중생제도를 말할 수 있을까?
출가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출가라는 단어의 의미를 좁고 얕게 이해해서 저지른 많은 잘못 가운데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오늘은 깊이 참회하게 된다. 아침이면 몸에 느껴지는 공기가 제법 서늘해진다. 안부전화라도 부모님께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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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 스님 / SF여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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