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최소 10만년 전쯤 뉴질랜드 북섬의 항구도시 와카타네에서 북쪽으로 50㎞쯤 떨어진 바다 밑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 폭발로 분출한 용암은 세상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차가운 바닷물에 식으면서 그 자리에 똬리를 틀었다.
한 번 터진 화산은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존재감을 알리며 용암을 토해내 마치 한 층, 한 층 돌을 올려 석탑을 만들어가듯 자신의 몸통을 부풀렸다. 그렇게 해서 바다 밑바닥에서부터 해수면까지 쌓아올린 높이가 자그마치 1,600m에 달했다. 화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수면 위로 321m까지 용암층을 더 쌓은 뒤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뉴질랜드의 활화산으로 유명한 화이트섬 얘기다. 화이트섬은 한 화구에서 계속 화산이 분출해 층을 계속 쌓아가며 산의 모습을 형성한 전형적인 성층화산이다. 면적이 3㎢니까 73㎢인 울릉도와는 체급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제껏 자신을 만들어온 이력만 놓고 보면 쌍둥이다. 울릉도에 나리 분지가 있듯 화이트섬에는 작은 분화구가 있다. 나리 분지는 해발 250m에 있는 것과 달리 화이트섬 분화구는 바다 밑 70m 지점에 있다.
화이트섬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극히 최근이다. 영국의 탐험가인 제임스 쿡이 천체 관측을 위해 타이티섬에 왔다가 뉴질랜드를 발견한 것이 1769년이다. 쿡 선장은 이때 화이트섬까지 왔다가 섬이 하얀 수증기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 화이트섬이라고 명명했다. 그 전까지는 마오리족 언어로 극적인 화산을 뜻하는 ‘와카아리’로 불렸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유황 채굴을 위한 광산 사업이 활발했지만 화산 폭발로 분화구 가장자리가 무너지면서 광부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폐광됐다.
화이트섬은 개인 소유로 지금은 과학 연구활동과 관광 용도로만 이용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 땅을 밟는 순간 마치 화성이나 달에 착륙하는 느낌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화산 활동 외에는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이곳에 이목이 쏠린 것은 지난해 11월 괴생명체가 목격됐을 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화이트섬 앞바다에 몸길이 8m쯤 되는 생명체가 수심 10m 바다에서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화이트섬에서 9일 화산이 분출해 관광객 수십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났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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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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