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미국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앞두고 지역 언론인 유니언 리더에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진보 성향의 공화당 대선 후보 맥클로스키가 젊은 사회주의 동맹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는 제보였다. 미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맥클로스키는 낙마했고 그해 리처드 닉슨이 재선에 성공했다. 사건의 뒤에는 조지워싱턴대 학생이던 19세의 로저 스톤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기획했다.
1952년 코네티컷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스톤은 닉슨 대통령의 강인함에 끌렸다.
등에 닉슨의 얼굴을 문신하기도 했다. 맥클로스키에 대한 공작을 벌이던 해에 스톤은 민주당 대선 주자 선거캠프에 침투할 스파이를 모집했다. 그 결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최연소 수사대상에 올랐다. 스톤은 이를 자랑스러워 했다.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것이다.
‘흑막정치의 전설’로 불리는 선거 전략가 스톤의 정치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80년과 1984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다. 2007년에는 대선 후보였던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지사를 불법 매춘으로 엮어 낙마시켰다.
그는 스피처 주지사가 투숙하는 호텔에 고급 콜걸을 상주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 당시 스톤은 스피처의 정적인 공화당 조셉 브루노의 선거를 맡았다.
스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절친이자 ‘킹메이커’였다. 1980년대 초 카지노사업 로비스트로 연을 맺은 뒤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며 대선 출마를 권했다. 2016년 대선은 막후에서 지휘했다. 승부처였던 ‘러스트벨트(낙후지역)’ 공략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멕시코 장벽 공약을 부각시켜 서민층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스톤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 의혹을 둘러싼 ‘러시아 스캔들’ 수사과정에서 5건의 위증을 저지르고 증인을 매수한 혐의로 최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최고 50년형을 받을 수 있다.
탄핵 조사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로서는 큰 악재다. 워터게이트부터 러시아 스캔들까지 권모술수로 버텨온 그가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년 2월6일 나올 선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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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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