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연합군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중국에 전시물자를 공급하려고 했으나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티베트를 통한 우회로를 확보하기 위해 2명의 장성을 달라이라마에게 보내 친서와 함께 작은 나무상자를 전달했다. 여기에는 윤달까지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명품시계 ‘파텍필립’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파텍필립은 1839년 스위스로 이민 온 폴란드 망명귀족 앙뚜와르드 파텍이 시계 장인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파텍은 세계를 돌며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프랑스의 시계기술자인 장 아드리앵 필립은 기술 개발에 전념하는 동업구조였다.
파텍 시계는 1851년 런던의 한 전시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졌고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자가 최초로 파텍 시계를 소유한 인물로 기록에 남아있다.
파텍필립은 세계 최초로 손목시계를 발명한 회사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숱한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 ‘시계 위의 시계’로 불리는 이유다. 1,300여명의 숙련된 기술자를 보유하고 1,200~1,500단계의 생산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거치다 보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파텍필립은 생산뿐 아니라 구매과정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구매자가 인적사항과 과거 구매내역 등을 적은 서류를 제출하면 제네바 본사에서 심사해 판매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시계의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해야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등 유명인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파텍 시계가 최상위 부자들의 물가지수를 나타내는 포브스의 ‘부유층 소비물가지수(CLEWI)’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스위스의 한 경매에서 파텍필립의 손목시계 한 점이 3,100만스위스프랑(약 362억원)에 낙찰돼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2014년 같은 회사의 회중시계가 2,323만스위스프랑(272억원)에 낙찰된 기록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랜드마스터 차임’이라는 이름의 이 시계에는 모두 1,580개의 부품이 들어갔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손목시계 하나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스위스 기술자들의 한결같은 장인정신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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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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