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럼프 대비했지만 소용 없어… 모두 내려놓으니 차차 나아져
▶ 선수생활 동안 즐길 줄 몰라, 잔디 알레르기 은퇴 후에야 알아...후배들에 인생의 밸런스 강조, 내달 소렌스탐 등과 레전드매치
![[인터뷰] 박세리 감독 “슬럼프에서 배웠죠,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인터뷰] 박세리 감독 “슬럼프에서 배웠죠,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9/08/11/201908112242105d2.jpg)
무서운 루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기슭에 박힌 공을 쳐낸 박세리 감독. 연장에 재연장 끝에 그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세리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세상을 빛내리.’ 그래서 세리였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있는데 그가 그랬다. 할머니가 지어준 한글 이름이라고 했다.
박세리(42)라는 이름 석자에는 한국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1998년 메이저 중의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맨발로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기슭에 놓인 공을 자신 있게 날리던 모습. 이는 IMF 구제금융의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는 한국인의 의지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그가 12년 간 LPGA 투어에서 거머쥔 우승 트로피가 스물다섯 개, 그 중 다섯이 메이저 대회에서였다.
전설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 때 한 옹골진 결심이었다. 열세 살의 세리는 차 안에 있었고, 그의 부모가 밖에 있었다. 어머니가 한 달만 이자를 미뤄 달라고 사정했지만, 상대는 매몰찼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지인에게 돈을 빌렸던 거다. 그는 우는 대신, 마음에 결기를 새겼다. “꼭 성공해서 엄마, 아빠가 저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뒤부터는 공 하나를 쳐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쳤어요. 그런데 (결심대로) 이뤘으니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운동 선수라면 피할 수 없는 슬럼프도 찾아 왔다. 그가 찾은 방법은 모두 다 내려놓는 거였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골프 인생을 시작했고, 2006년 맥도날드 LPGA챔피언십에서 카리 웹(호주)을 꺾고 트로피를 안았다. 슬럼프가 그에게 준 선물은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다음 달 20일부터 22일까지 강원 양양군에서 열리는 ‘설해원 레전드 매치’에 출전하느라 2년 반 만에 다시 골프채를 잡은 박세리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난 5일 만났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누가 봐도 ‘운동하는 언니’ 같았고 얼굴은 화면에서보다 훨씬 작아 놀랐다.
-세리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지어주셨어요. 한글 이름이죠. ‘세계를 빛내리’라는 뜻으로 지으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또 우연찮게 (그렇게 돼서)… 하하하.
-아버지가 골프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권유를 한 건가요. ▲골프를 아버지가 좋아했고 또 잘 하셨어요. 예전에는 기계체조 선수였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육상을 했기 때문에 골프엔 관심이 없었어요. 어느 날 아빠가 ‘연습장 가서 골프 한번 해볼래’ 해서 간 적이 있는데 저는 재미있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빠 친구가 한번 대회에 구경 가보자고 해서 갔어요. 거기서 ‘전국 최고’라는 선수들을 소개받고 왠지 누가 나를 그렇게 소개하면 참 괜찮겠다는, 좋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아빠한테 골프하겠다고 했어요.
-굉장히 혹독하게 훈련한 걸로 유명한데요.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했어요. 이런 적이 있었어요. 아빠가 아침에 연습장에 내려주고 가셨는데 저녁까지 사람들 만나고 일하다가 깜빡 잊은 거죠. 한밤에 집에 들어갔는데 제가 없으니 그때 생각이 난 거예요.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연습장에 가보니 그때도 제가 연습하고 있었던 거예요.
-미국에서 활동을 하게 됐잖아요. 왜 가게 됐나요. ▲무작정 갔어요, 혼자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로 전향했잖아요. 중3 때 프로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서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그러다가 대학 갈 시기가 왔어요. 그때 좀 (결정하기가) 힘들었죠.
-미국에 혼자 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엄청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대회장에 가서도 라커실에도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그러다가 낸시 로페즈(62)와 로리 케인(55) 선수를 알게 됐어요. 그들은 제가 영어를 못하는 걸 아니까 조심스럽게 많이 도와주셨죠. 함께 연습 라운드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친해지면서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LPGA 투어 12년 간 25회 우승을 했죠. 하지만, 성적이 매번 좋을 수도 없었을 테고, 생각대로 풀리지 않은 적도 있었을 텐데요. ▲슬럼프가 있었죠. 첫 라운드에서 스윙을 하는데 내가 갖고 있던 감의 스윙이 아닌 거예요. 그리고는 둘째 라운드부터 못 쳤죠.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회 끝난 뒤에 일주일쯤 쉬고 다음 대회에 나갔는데 똑같은 거예요. 그래도 슬럼프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슬럼프였던 거죠. 저는 운동선수니까 슬럼프가 올 것을 알고 그것마저도 대비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처럼 생활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거예요. 마치 내 인생의 모든 게 골프에 담긴 것처럼 살았는데, 골프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던 거죠. 돌이켜보면 슬럼프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걸 배웠고 그간 보지 못한 걸 보게 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내려놓는 게 답이었어요. 힘드니까, 가장 힘들 때니까 쉬어야 하는 거죠.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음 다시 나와야 하는 건데 프로 골퍼에게 그게 되나요. 누가 기다려주겠어요. 언론이, 대중이, 스폰서가. 그때 알았어요. 나는 내가 골프채를 놓고 싶을 때 놓고 싶다고, 이렇게 놓고 싶지는 않다고. 그때 저는 운이 좋게도 스폰서가 이해하고 기다려줬죠. 그래서 다 내려놓고 시간을 좀 가졌어요. 그리고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죠.
-골프는 뭐다,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면요. ▲골프는 인생의 도전과도 같아요. 한 홀, 한 홀이 다 다르거든요. 분명히 제가 제 공을 치는데도, 티샷했을 때, 세컨샷 했을 때, 퍼트했을 때 다 달라요. 대신 어떤 상황에서든 도전할 수 있는 희망도 보이고 용기도 생기죠. 좌절할지라도 다시 희망을 찾게 돼요. 그러니 도전이죠.
-중1 때 차 안에서 했던 결심도 이뤘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니 이루고자 했던 건 다 이뤘죠. 안타까운 것 하나는 그랜드슬램을 하지 못한 건데 그것 외에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사람이에요. 꿈을 가진다 해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참 적은데, 저는 결국 이뤘으니까요.
-골프로 많은 걸 이뤘지만, 개인 박세리를 생각했을 때 아쉬운 것도 있을 듯해요. ▲함께 생활했던 한국 선수들하고 밥 한번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어요. 스케줄에만 연연해서. 한 명씩 은퇴하니까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표현은 잘 안 했어도 서로 의지했거든요.
-은퇴 전에 이후의 삶을 계획했나요. ▲운동선수였으니 은퇴하고도 운동에 관련된 일만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골프 선수도 은퇴하고 나서 할 게 많다는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은퇴 후에 왜 골프를 안 했어요. ▲그동안 후회 없이 칠 만큼 치고 은퇴해서요. 아직은 은퇴한 지 별로 안돼서 그런지 그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햇빛 알레르기, 잔디 알레르기가 있었다고요, 선수 생활 할 때는 몰랐나요. ▲더워서 그런가 보다, 뭘 잘못 먹었나 보다 그러고는 무시했죠. 선수 생활 끝나고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건 무시할 만한 것 같아요. 뭐든지 마음 먹기에 달렸어요. 그렇게 최면 걸듯 살아서 그런지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지 뭔 알레르기가 있는지 몰랐죠. 그런데 비염은 엄청 심해서 코에 맞는 알레르기 주사의 도움을 받아서 좋아졌고요.
-인생에서 골프 말고 남은 게 뭐가 있나요. ▲골프 말고 제 인생에서요? 없는 거 같아요. 인생의 전반전은 골프가 모든 것이었죠. 후반전에 뭘 선택할 지 모르지만 다 잘해보고 싶어요. 전반전이 언더 파(규정 타수보다 적은 타수)라면, 후반전은 그만큼은 아니어도 이븐 파(규정 타수와 같은 타수)는 하면서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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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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