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실의 공주인 앤은 로마를 방문하던 도중 정해진 스케줄과 딱딱한 제약에 싫증이 나서 거리로 뛰쳐나가 우연히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를 만나게 된다.
조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서민의 삶을 즐긴 앤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워한다. 1953년 개봉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줄거리다.
공주 역할은 오드리 헵번이, 신문기자 역할은 그레고리 펙이 맡았다. 오드리 헵번이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젤라토를 맛있게 먹었던 곳이 있다. 바로 스페인 계단이다.
스페인 광장에서 삼위일체 성당까지 135개로 이뤄진 스페인 계단은 관광객들이 투어를 하다가 잠시 휴식하는 곳이자 현지인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스페인 계단은 1723년부터 1726년 사이 바로크양식으로 만들어져 300년가량의 역사가 묻어 있다.
이 계단은 한 프랑스 외교관이 남긴 유산으로 지어졌으나, 인근에 주교황청 스페인대사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스페인 계단으로 불리게 됐다. 요즘 로마를 찾는 관광객들이 콜로세움, 트레비분수 등과 더불어 꼭 거쳐 가는 명소다.
하지만 앞으로 관광객들은 이 계단에 앉기도 어렵게 됐다. 로마 경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페인 계단과 주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새 규칙 시행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스페인 계단에 앉거나 눕지 못한다.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피자·샌드위치 등의 패스트푸드를 먹는 행위도 금지된다.
계단 아래 배 모양의 바르카치아 분수에 몸을 담그거나 물을 마시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160~400유로(약 21만~54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번 조치는 수용 범위를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오버투어리즘’으로 로마의 문화유산이 크게 훼손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 스페인 계단과 광장의 대리석이 대기오염 영향으로 색이 변질되고 있는데다 관광객들이 버린 껌·커피·와인 등으로 얼룩져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조치에 대해 “파시스트 수준의 과도한 조치”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 등으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런 논쟁 속에 오드리 헵번처럼 아이스크림은 먹지 못하더라도 계단에 앉는 추억은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게 가능하려면 오버투어리즘 해소와 모든 관광객들의 절제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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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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