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2.9% 인상한 8,590원으로 결정 ‘속도조절’
▶ 청와대“현실 고려, 소득주도성장 포기 아니다”, 노동계“총파업 불사”반발… 야“정책의 실패”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 적용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한 지난 12일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취임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14일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환경·고용 상황·시장 수용성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위가 고심에 찬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17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었으나 문재인정부는 출범하자마자 2018년 최저임금을 16.4% 인상해 7,530원으로 결정했다. 이어 2019년에는 10.9% 인상해 8,35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 오른 것은 1987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외환 위기 당시인 1999년(2.7%), 금융 위기 시절인 2010년(2.75%)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공언하면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성장률 하락, 고용 위축,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이 이어지면서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로 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실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라며 “소득·비용이 균형을 이룰 때 국민 경제 전체가 선순환하지만 어느 일방에 과도한 부담이 되면 악순환의 함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난 2년 간 최저임금은 표준 고용계약 틀 안에 있는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줬다”면서도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 등 표준 고용계약 틀 밖에 있는 분들에게 부담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최저임금 정책이 을과 을의 전쟁으로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되고 정쟁의 빌미가 된 것은 가슴 아프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다만 김 실장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기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런 오해는 소득주도성장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좁게 해석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 부담이 커진 만큼 동결됐어야 했다”면서도 “속도 조절이 이뤄진 것은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결정을 ‘최저임금 참사’로 규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폐기를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15일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민주노총 추천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이 전원 사퇴한다고 밝히고 “최저임금 논의를 부당하게 이끌어간 공익위원 역시 9명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경제성장률에 물가인상률을 더한 임금 동결 수준인 3.6%에도 못 미치는 사실상의 삭감안”이라고 주장했다. 김명환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노총 간부 700여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다 해산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정부의 노동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7월 18일 총파업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미이행에 대해 사과하자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자제한 채 “내년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절차를 밟아 정한 것”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자유한국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사과에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오기와 함께 공약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했다”면서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했다는 사실이 소득주도성장론의 요체”라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가인 김병민 행정학박사는 “대통령의 사과는 사실상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면서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어서 앞으로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기존 지지층 일부의 이탈로 총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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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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