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성수무강 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오천만세에/복녹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황성신문’에 실린 이 노랫말은 지금 들으면 생소하기 그지없지만 1902년 8월15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엄연한 공식 국가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다.
왕권 강화와 찬양에 중점을 둔 것이 지금의 애국가와는 천양지차다. 나라의 주권을 국민이 아닌 왕이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이치다.
한국에서 ‘애국가’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1890년대부터다. 하지만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불렀다. ‘애국가’라는 이름의 노래가 10여곡이 넘었고 멜로디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이나 영국 국가를 차용한 경우가 허다했다.
애국가가 국민과 나라의 노래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고 4년 후 중경 임시정부가 사용을 허가하면서부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한국 광복군 당시의 애국가에 대해 “우리가 알던 애란의 민요곡이 아니라 안익태가 작곡한 곡이었다. 우리는 따라부르지 못하고 그 경건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고개를 숙였다”고 회상했다.
1948년 공식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1907년 나온 ‘찬미가’ 중 애국가로 소개된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작사자가 알려지지 않은 탓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윤치호·안창호·김의식·최병헌 등이 거론되고 학계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붙었지만 아직도 ‘작사자 미상’이라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애국가가 바뀔 뻔한 위기도 있었다. 1982년 애국가가 국가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에 국가제정추진위가 구성됐다. 곡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가사도 영토를 제한하고 의타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반발 여론이 워낙 거세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애국가가 23년 만에 새로 편곡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1995년 KBS교향악단이 제작한 애국가 음원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합창단이 참여해 편곡한 새로운 버전으로 바꿨다. 전주와 간주에 금관악기와 목관악기 소리를 가미해 현대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편곡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공유마당’ 사이트에 음원을 올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애국가가 온 국민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서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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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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