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자 중남미에서는 경제통합 움직임이 일어났다.
1980년대 초 중남미 국가들을 강타했던 외채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수입대체에 주안점을 뒀던 예전 경제모델 대신 수출 주도형의 개방적인 발전전략이 고개를 든 것이다. 자연적으로 역내 경제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985년 11월30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선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아르헨티나의 첫 민선 대통령인 라울 알폰신과 브라질 대통령 조제 사르네이는 이 선언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과 통합 의지를 피력했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창설을 향한 첫발은 이렇게 내디뎌졌다.
이후 후속 준비작업을 거쳐 1991년 3월26일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를 포함한 4개국이 ‘아순시온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남미의 첫 경제블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1995년 1월1일 메르코수르는 무역장벽 철폐와 정치·경제 통합을 기치로 본격 출범했다. 남미 인구의 70%, 국내총생산(GDP)의 83%를 차지하는 거대한 경제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메르코수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9년부터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역내 교역이 줄고 통상분쟁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을 등에 업고 좌파 정권들이 속속 출범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론이 대두됐다.
2003년에는 브라질에서 룰라 다 시우바가, 아르헨티나에서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정권을 잡았고 2004년에는 우루과이에서 타바레 바스케스 정부가 등장했다.
이후 메르코수르는 정치집단으로 변질되면서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어져갔다. 좌파 정권들은 유럽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라는 경제인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개별 무역협상을 금지하는 메르코수르 규정 때문에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메르코수르의 경직된 운영방식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우파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메르코수르가 글로벌 환경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회원국들이 양자 협상을 통해 자유무역 협상을 자유롭게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미에 부는 우파 정권 바람이 세계 무역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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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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