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대장과 그의 부인이 관사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오랫동안 난폭한 ‘갑질’을 일삼았다하여얼마전 한국이 떠들석했다. 공관병에게 사적인 가사노동을 수시로강요하고 폭언과 폭력, 협박까지도운운하여 이에 시달렸던 한 공관병은 자살까지도 시도했다는 ‘노예 취급’과 ‘갑질’ 행동사건으로정당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와 비슷한수많은 사건들이 불과 몇 년전 만해도‘ 또 그랬거니…’ 하며 외면되거나 무딘 반응이 보여졌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 제도적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하는 모국의 모습이대견스럽다.
여러 형태의 난폭하고 추잡한‘갑질’사건들이 적극적으로 들추어지고 시정되어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깨닫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인권존중의 모범이라 할수 있는 미국역사에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던 ‘ 갑질’ 사건 하나를 함께 나누고 싶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미국 독립전쟁 초기에 3살의 젊은 나이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여 지금까지도 대단한 인정을 받고있다. 그로부터 5년후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8년 재임기간중 영토를 늘리는 등 지대한 공헌을 하여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얼굴은 5센트짜리 동전에 새겨져있고, Mt. Rushmore국립공원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네 명 대통령중의 하나다.
독립선언문 앞 부분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어 자유와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고주장하며 노예제도 폐지계획을 홍보했던 제퍼슨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아버지와 장인으로부터 175명의 노예를 상속 받았고, 일생에600여명의 노예를 소유하였다. 위대한 자신의 사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아니, 옮기지 않았던그의 ‘갑질’ 행동이며, 또한 그는생물학적으로 백인이 월등하며,흑인과 백인이 함께 평화롭게 자유를 누릴수는 없다는‘ 갑질’ 인종차별 사상을 갖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즐겨했고, 바이올린 연주실력도 대단했다. 소년기에 아버지를 여의고 버지니아 농장의 재산과 토지를 물려받아 언덕 높은 곳에 벽돌로 저택을 지어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이 곳에 거주하며 인근에 버지니아 주립대학 (University of Virginia)을 창설하였다.
그는 29살에 5살 연하의 과부Martha 와 결혼하여 2남4녀를 두었는데 부인은 33살에 출산 도중목숨을 잃었으나 재혼은 하지 않고 30살 연하였던 자신의 노예헤밍스 (Sally Hemmings, 1773-1835)와 관계를 맺어 6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 죽기 전에 헤밍스의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해방시켜 주었고 나머지 수백명의 노예들은 다 팔았다.
이런 제퍼슨의 사생활 이야기를할 때 헤밍스를 정부(mistress )라고 표현하여 그녀가 동반자로 대접을 받은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절대로 올바른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두 사람이 동의하여 이루어지는 관계인데 헤밍스와는 오로지 주종관계로 성관계가 맺어져아이들을 출산했으니 장시간에 걸친 성폭력 피해자이다.
여성을 천시하고 노예를 짐승대우 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기록해 온 이 역사는 오랫동안 왜곡되었고, 왜곡된 교육으로 기만당한세대들은 뒤늦게라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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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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