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를 거의 40년전 처음 구경했다. LA에서 연수하던 해 여름 헐리웃 보울 야외음악당에서였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서곡)’ 연주 막바지 전투장면에서 대포소리에 맞춰 폭죽이 굉음을 내며 연주장 돔 위로 잇달아 치솟았다. 밤하늘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불꽃에 얼이 빠졌었다. ‘1812년’은 헐리웃 보울의 고정 레퍼토리여서 올해도 변함없이 연주된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시애틀에서 불꽃놀이를 제대로 구경했다. 헐리웃 보울에선 입장료가 가장 싼 언덕 끝자리에 앉아 멀찌감치 봤지만 시애틀에선 다운타운 호반의 호텔방에 앉아 이웃 개스웍스 공원에서 펼쳐지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화약 냄새까지 맡으며 구경했다. 당시 시애틀 지사로 전근 온 나는 아파트를 구하기 전 회사 근처인 그 호텔에 묵었다
연방 공휴일인 독립기념일은 전통적으로 불꽃놀이 축제날이다. 뉴욕(이스트 리버), 시카고(미시간 호수), 보스턴(찰스 리버), St. 루이스(미시시피 강), 워싱턴 DC(내셔널 몰), 샌디에이고(미션 베이) 등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사실은 LA의 헐리웃 보울도 ‘1812년’ 외에 매년 개막연주회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축제로 열고 있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전통은 후에 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의 ‘계시’에 따른 것이다. 그는 1776년 7월3일 부인 애비게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날은 미국역사의 가장 기억될만한 신기원이 될 것이요…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헌신과 함께 퍼레이드‧쇼‧경기‧예포‧‧화톳불과 조명 등으로 동부에서 서부까지 세세토록 경축해야 마땅할 것이요…”라고 썼다.
첫 독립기념일 불꽃축제는 이듬해 7월4일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에서 펼쳐졌다. 당시 언론은 “저녁이 종소리와 함께 저문 뒤 13발의 로켓(첫 13개 주를 상징)이 밤하늘을 현란한 불꽃으로 장식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요즘의 분수형, 뱀형, 해바라기형, 체리나무형 등 각종 기술적 폭죽도 1784년 전에 개발됐다.
그 뒤로 애덤스의 말처럼 독립기념일엔 불꽃놀이, 퍼레이드, 쇼, 연주회 등이 전국적으로 벌어진다. 미국국가인 ‘성조기(Star-Spangled Banner)’를 비롯한 애국노래들이 연주돼 국민의 화합과 단결을 고취한다. 헐리웃 보울의 ‘1812년’ 연주는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1812년의 보로디노 전투가 아니라 미국이 영국을 물리친 1812년 독립전쟁을 기린다.
하지만 폭죽을 발명한 건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BC 200년경 누군가가 우연히 불속에 던진 대나무가 엄청 큰 소리를 내며 쪼개진 게 단초였다. 약 1,000년 후 역시 중국에서 불로불사 묘약을 만들던 연금술사들이 유황, 질산칼륨 등 화학약품을 섞었다가 불로묘약이 아닌 화약(fire drug)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해서 대나무에 화약을 장전한 신무기가 개발됐다.
평화시엔 폭죽이 중국 황제의 즉위식 같은 궁궐축제에서 유흥용으로 탈바꿈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폭죽을 수입한 아라비아와 유럽에서도 불꽃놀이가 이미 1700년대에 유행했다. 프랑스의 루이대제와 러시아의 피터대제는 불꽃놀이 광팬이었다. 헨델이 영국왕 조지 2세를 위해 관악기 명곡 ‘왕궁의 불꽃놀이(Royal Fireworks)’를 작곡한 것도 1749년이다.
물론 불꽃놀이가 독립기념일에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12월31일 밤 새해맞이 불꽃놀이도 세계 거의 모든 도시에서 휘황찬란하게 벌어진다. 샌프란시스코, 두바이(아랍 에미레이트),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등이 특히 유명하다. 한국에선 매년 10월초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서울 세계 불꽃축제’가, 포항에선 7월말 ‘포항 국제 불빛축제’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불꽃놀이를 누구나 즐기지는 않는다. 지난 2015년 폭죽사고로 11명이 숨졌고 거의 1만 2,000명이 크게 다쳤다. 불꽃놀이 화재가 매년 2만여 건에 달한다. 개와 고양이와 새들뿐 아니라 소음 노이로제를 겪는 사람들에게도 불꽃놀이는 악몽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잡귀를 쫓아내려고 폭죽을 터뜨렸다지만 이들에겐 폭죽 자체가 무서운 잡귀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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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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