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라며 영혜는 완강히 거부한다. 아버지는“그냥 먹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라고 권유해보지만 영혜가 끝까지 버티자 그녀의 뺨을 후려 갈긴다. 그리고 “세상 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고함을 치며 영혜의 입안에 탕수육을 짓이겨 넣는다. 결국, 영혜는 손목에 칼을 긋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를 쏟아낸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아버지는 고기를 먹는 것이 정상이고 채식은 비정상이다라고 생각한다. 다른 가족 모두도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고 심지어 미쳤다고까지 여긴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난장이 나라와 거인나라를 방문했을 때 걸리버가 비정상처럼 보인 것과 같이, 다수와 소수의 차이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대학들 가운데 등록할 대학을 결정하는 시기인4월, 영혜와 비슷한 갈등을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합격한 대학 몇 군데 오픈 하우스에 참석해서 교수와 재학생들도 만나보고 캠퍼스 분위기를 살펴보고 자신과 어울리는지 알아보기를 원하는 학생에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은“무조건 랭킹 높은데 등록하면 되지 무슨 방문이냐”로부터 시작해서“왜 하필이면 그 대학에 가려고 하니, 남들이 다 알아주는 XYZ 대학에 등록해라”에 이르기까지, 다수에 편승하기를 권유한다.
사실, 고교생활 내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억지로 끌려 다니며 공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다 실패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지원대학 리스트마저 남이 정해준 상황이라면, 몇 군데 합격한 대학들을 놓고 이제 와서 학생 스스로 선택하도록 놔둘 리 없다. 하지만, 부모의 종용을 의문 없이 따르거나 남들의 조언을 무작정 받아들여 등록 대학을 정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물론, 이모저모를 따져서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구매자의 후회(buyer’s remorse)는 반드시 있다. 나중에 치밀어 올라오는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대학교육의 현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대학생활은 나로서기(나로서+ 홀로서기)를 본격적으로 진행시키는 기간이다. 그 과정에서 대학이란 곳이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우선, 대형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보고 있는 것은 교수의 슬라이드가 아니라 자신의 노트북 스크린에 뜬 페이스북, 유튜브, 게임이다. 아무리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여도 이미 스마트폰 중독으로 팝콘 브레인이 된 상태라 집중이 어렵다. 왼쪽에 앉은 학생은 누군가가 스펙도 만들어주고, 에세이도 써줘서 들어왔고, 오른쪽에 있는 학생은 표준시험지 유출로 한달 만에 학원에서 점수를 올려 합격했고, 뒤에 있는 학생은LGBT(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장학금까지 받고 다니고 있다. 게다가, 주변 친구들4명중1명은 학점 걱정, 인간관계 걱정, 돈 걱정, 취업걱정 등등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졸업 후 뒤를 돌아보면 가끔 도움되는 강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들을 만큼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특히, 새내기 사회인으로서 월급을 받아 빚을 갚고 있다면 의문의 골짜기는 블랙홀처럼 깊어진다. 대학시절,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것도, 남의 보증을 선 것도, 사채를 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빚 갚는데 젊은 시절을 바쳐야 할까.
아버지의“널 위해서 하는 말”은 영혜로 하여금 손목을 긋게 했다. 등록대학 선택에서, 다수에 편승해라, 소수가 되라는 조언을 쫓기보다는 나로서기 시작점에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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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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