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27일. UC 버클리의 외국인 학생 국제기숙사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인도 벵갈 출신의 유학생 프로센지트 포다르가 브라질 여학생 타티아나 테라소프를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포크댄스 클래스에서 테라소프를 알게 된 포다르가 자신의 일방적인 구애가 거절되자 저지른 살인이었다. 포다르는 2급 살인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족이 UC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비화했다. 포다르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테라소프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는데도 학교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당사지인 테라소프에게 포다르의 살해 위협이 고지되지 않아 살인을 막지 못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소송에서 주 대법원은 정신질환자가 3자에게 위협이 될 경우 정신과 의사는 공익의 관점에서 이를 고지해야 한다고 판결, 소위 ‘테라소프 판례’를 만들게 된다.
40년도 훨씬 지난 사건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트럼프를 둘러싼 정신건강 논란 때문이다.
후보 시절부터 인종, 종교, 여성차별 발언 등 끊임없이 막말을 해대는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 ‘테라소프 판례’를 근거로 트럼프의 정신건강 상태를 공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최근 더욱 높이고 있다. 존스 홉킨스 의대 존 가트너 박사는 ‘제3자를 보호해야 하는 경우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알리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의무‘라고 규정한 이 테라소프 판례를 들어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정신상태가 심각하고 명확한 위협이 될 수 있어 공공 이익을 위해 이를 공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미 정신의학회의 소위 ‘골드워터 룰’에 막혀 공식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룰은 ‘직접적인 진료 없이 공인의 정신상태를 공표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트럼프를 직접 진료하지 않는 이상 그의 정신상태를 공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룰은 지난 1962년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공화당 베리 골드워터 후보가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정신상태’라는 조사를 공표했던 잡지가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생겨난 것이어서 아이러니 하다.
취임한 지 이제 막 1개월이 지났을 뿐인 신임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까지 의심해야 하는 것은 미국 유권자들의 불행이다. 대통령 검증에 실패해 참담한 처지에 놓인 한국 상황이 미국에서도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걱정이다. 아직 3년 11개월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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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정책사회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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