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는 최근 들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일색이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 이후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대호’가 있었고 저항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동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다룬 ‘귀향’ 일제강점기 예인의 생활을 담은 ‘해어화’가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도 일제강점기 배경의 작품들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 초청이라는 낭보를 날리고 있다. 오는 10월 북미 개봉을 앞둔 칸영화제 초청작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원작 소설의 배경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옮겨왔다. 1920년대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이야기를 그린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돼 첫 시사를 한다. 북미 흥행의 관건인 토론토 영화제는 ‘아가씨’와 ‘밀정’ 2편을 모두 초청했다.
영화마다 일제강점기를 택한 동기는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영화인의 창작욕 발로’가 이유이다. 일제 강점기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충무로 속설을 깨고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았던 최동훈 감독은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저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나부터 책도 읽고 공부도 많이 했다”며 “이 영화가 잊을 수 없는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한편, 장르적인 영화로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아가씨’를 만든 박찬욱 감독은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내면적이고 복잡한 개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영화도 나올 법하다고 생각했다”며 “일본과 서양식 건축이 조화를 이룬 저택을 비롯해 연미복을 입은 신사가 서양식 서재에서 일본식 다다미 공간으로 이동할 때에는 구두를 벗는 등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하고 근대화가 진행 중인 1930년대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기에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고종의 딸을 다룬 ‘덕혜옹주’,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그린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제작 중이라니 한 동안 한국 영화계의 일제 강점기 탐구는 계속될 모양이다.
자국시장 점유율만 높이고 해외 흥행에 부진했던 한국 영화가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의 아픔을 고증과 설정이 잘된 창작물로 호재를 누리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끼워넣는 식은 아니어야 하고 고증을 철저히 하느라 재미를 잃어버려서도 안된다.
광복절만 되면 손자손녀에게 독립운동 이야기 보따리를 풀던 풍경이 사라져가는 요즘 ‘저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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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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