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英 이라크전 보고서 “英, 미국과의 관계서 무조건 지지할 필요 없어”
▶ 150억원 들여 7년간 활동 끝에 12권짜리, 260만 단어로 된 보고서 공개
"무슨 일이든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끈 존 칠콧 위원장이 6일 12권짜리 260만 단어로 이뤄진 최종보고서 공개와 동시에 연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2002년 6월 당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비밀 메모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참전을 결정한 당시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전을 비롯해 부시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들을 지지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이날 공개된 메모는 이런 오명이 헛된 말은 아니었음을 거듭 드러낸 것이다.
블레어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에 의해 2009년 6월 설립된 진상조사위는 7년 만에 '칠콧 보고서'로 불리는 공식 보고서를 공개했다.
영국은 2003년 3월~2011년 12월까지 이어진 이라크전에 초기 6년간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전쟁 기간 영국군 179명이 전사했다.
원로정치인 칠콧 위원장과 5명의 위원이 참여한 조사위는 참전 이전인 2001년부터 2009년까지를 기간으로 정부문서 15만건을 분석하고 블레어를 비롯해 120명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조사 비용에 1천만파운드(약 150억원)가 들었다.
애초 위원회는 1년 안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참전 기간인 6년보다 오래 계속됐다. 정치권의 민감한 반응에 눈치를 봤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칠콧은 "9년간 일어난 일들을 바닥까지 살펴야 했다"고 해명했다.
진상조사위 가동은 이라크전 참전의 과오를 밝히고 역사의 교훈을 삼자는 취지였다.
영국에서 이라크전 개입은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외교정책 실패로 간주된다.
칠콧 위원장은 전쟁 명분이었던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WND)와 관련해 "WMD 위협의 정도에 대한 판단들은 정당화되지 않은 확실성과 함께 제시됐다"며 "이라크 정책은 잘못된 정보 판단들에 기반해 결정됐다"고 결론지었다.
미·영은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 WMD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토대로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으나 그런 무기는 결국 확인되지 않았다.
블레어도 잘못을 인정했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형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칠콧 위원장은 또 충분한 사전 숙고 없이 이뤄진 참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적 수단들을 끝까지 살피지 않았다. 그 당시(참전 결정 당시) 군사작전은 마지막 수단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나중에는 군사작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참전 결정 당시인 2003년 3월에는 후세인으로부터 임박한 위험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분명한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침공에 따를 결과들은 과소평가됐다"며 "후세인을 제거한 이후 계획이 완전히 불충분했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목표 달성도 실패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00명을 넘는 영국민이 사망했고 이라크 국민은 2009년 7월까지 15만명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블레어 전 총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보고서는 군사작전을 위한 법적 근거가 있다고 결정되는 상황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다"며 적법성이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칠콧은 참전 결정이 불법인지는 조사위 "권한 밖"이라고 선을 그었다.
보고서는 이라크전에서 얻을 교훈은 "블레어가 이라크에 관한 미국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점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조건적 지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라고 결말지었다.
이에 대해 블레어는 성명을 통해 "어떤 실수라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후세인을 제거하는 게 더 나았다고 믿고 있고, (이라크전이) 오늘 중동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의 원인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군사작전을 취한 내 결정에 동의하든 안하든 내 신념과 최선의 국익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블레어가 속한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날 의회에서 "잘못된 구실로 시작된 군사공격 행위였고, 불법적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압도적 견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내외 안전을 보호하는 대신 역내 테러에 기름을 붓고 확산시켰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더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미국과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코빈의 언급에 "미국이 모든 것에서 항상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미국과의 협력이 우리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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