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보나르(1867 ~ 1947)의 그림을 보러 샌프란시스코의 리전 오브 오너 뮤지엄에 다녀왔다. 보나르 전시가열린다고 샌프란시스코 화가들의 기대가 컸고 꼭 다시 보고 싶은 전시라며 환호했다. 나 역시 보나르의 그림책을 들여다보며 늘 경탄하곤 했다.
인생의 경륜이 익은 노인들이 전시장에 많이 있다며, 좋은 그림도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들이 더 이해한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하며, 소중한 듯 한참씩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그의 그림은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관조해야 하는, 구석구석이 색채의 광휘로 빛나는 따뜻한 그림이었다. 보석처럼 찬란한 그림이란 게 이런 그림이구나 느끼며, 관람자를 이끌어 그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으로 이끄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은밀한 그의 일상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보나르는 무척 조용하고 말을 아끼는, 그림 외에는 자신에 대해 별 말이없는 내성적인 화가였다. 그래서 더욱 그의 그림은 일기처럼 자신의 일상 속의 에로티시즘, 꿈과 불안, 자연의 찬미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은밀하게 또한 찬란하게 펼쳐 보인다.
일생 그의 뮤즈였으며 동반자인 ‘마르트’라는 이름의 여인을 그렸는데, 그녀의 얼굴을 선명히 그리지 않아 신비한 매력을 지닌 이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자폐증과 함께한 우울증과 피부병을 앓았던 그녀는 그를 화가 친구들로부터 소외시켰고, 피부병 치료를 위해 자주, 함께 자연 속의 요양원으로 여행을 했다.
그녀는 오래오래 목욕을 하는 버릇이있었기에 미술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구성과 색조의 목욕하는 여인의 그림(사진)을 그는 지속적으로 그렸다. 화단에서 소외되어 오로지 한 여인과만 함께한 고립된 생활은 오히려 오로지 그림에 매진할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하여, 가장 개성적인 그의 화풍이 무르익는데 기여했다.
인상파가 빛을 그렸다면, 그는 빛이아니라, 색조의 찬란한 광휘를 그렸고 일본화에서 영향을 받아 원근법을 따르지 않고 자연과 인간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 속의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속에 자연과 인간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일체감을 드러낸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마티스의 야수파와 피카소의 입체파의 강력한 새로운 사조에 거리를 두고 그 자신만의 조용한 내면의 화풍을 고집하는 그를 약한 화가라고 매도했다. 이에 마티스가 나서서 그를 회화의 대가라고 변호했고, 르동, 로트렉, 모네 등 당시의 대가들이 그의 그림을 인정하고 주시했다.
그림을 보는 대중의 시선을 바꾸어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시작하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사조를 뛰어넘는 화가가 있다.
새로운 사조는 또 다시 새로운 사조에 의해 역사 속 과거의 화풍이 되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영원히 아름다운, 찬란한 미를 창조하는 화가들은 유행을 쫓는 시대로부터의 고립을 이겨내며 오로지 홀로 그 자신만의 미의 실현에 온 생을바친다.
그는 무척 예민하여 눈앞의 사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일상 속에 포착하는 매혹적인 순간을 오래오래 숙고하여 내면에서 자라난 기억을 천천히 오랜 시간 음미하며 그렸는데, 죽음의 순간에도 아들에게 그림을 가져오도록 하여 마지막 한 점을 더 찍었다는 일화가 있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다운 조화 속에빛나는, 범상한 일상의 깨어난 순간들을 그렸기에 생태계 파괴로 인해 더욱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관심을 갖게 된현대인이 그의 그림에 매료되고 있다.
테러와 자연 재해 등 암울한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우지만, 그의 그림처럼이 삶엔 아름답고 고마운 은총이 또한 가득하다는 깨달음을 준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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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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