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십 강하고 믿음직한 장남
데이빗 류 당선자는 1975년 한국에서 태어나 6세에 부모를 따라 이민 온 1.5세다. 아버지 류을준(69)씨는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일반사회 교사로, 어머니 류원정(67)씨는 고려대 간호학과를 나온 간호사였다.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가 기회의 땅 미국으로 먼저 건너왔고 그는 아버지와 한국에 남아 할머니 품에서 컸다. 여섯 살이 되던 1980년,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넜고 여동생 에스더와 남동생 조셉이 태어났다.
어머니 류원정씨는 “어릴 적부터 뭐든 혼자의 힘으로 척척 해내고 스스로 열심히 하는 아들이다”며 “미국에 오자마자 초등학교 1학년에 진학했는데 두 달 공부하고 2학년에 올라갔고 3학년은 월반을 했다.
아이큐가 150이 넘었던 것 같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기프티드(gifted) 프로그램을 다녔다”고 했다. 존 버로우즈 중학교와 프란시스코 브라보 메디칼 매그닛 고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길 원하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UCLA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면서 부모님께 의대 진학 포기를 선언하고 경제학을 선택했다.
류원정씨는 “워낙 잘 자라주어 사춘기도 그냥 지나고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아들이었기에 실망을 했지만 믿어주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처럼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는 학창시절 리더십과 봉사정신이 유달리 강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 부회장에 뽑혔다. 대학 시절 UCLA 한인학생회 회장을 지냈고 한미연합회(KAC)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 공공 일꾼 되려고 정치 입문
한미연합회에서 시민권 취득을 도우며 시민을 우선하는 ‘공공 일꾼’(public servant)의 의미를 깨닫게 된 그는 뉴저지 주립대(럿거츠) 대학원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했다. 뉴저지와 워싱턴 DC의 비영리단체들, 유엔 본부, 서울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27세에 이본 버크 전 LA카운티 수퍼바이저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6년간의 보좌관 생활은 그에게 사회복지, 정신건강, 홈리스, 포스터케어 시스템 등과 같은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 시절 마음 속 깊이 새긴 단어가 ‘공공 일꾼’이다. 정치인은 시민을 위한 공공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정계 진출을 결심한 그에게 ‘겸허’(humble)를 가르쳐준 이본 버크 전 수퍼바이저와 제브 야로슬라브스키 수퍼바이저, 존 챙 가주 재무장관 등은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LA 시의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에게는 ‘아웃 사이더’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그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어차피 아웃사이더가 훨씬 더 많은 세상을 살고 있다. 그는 인사이더 10명보다는 아웃사이더 80명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의 선거캠페인 사무실에는 한인 1세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다. 젊은 일꾼을 위해 밤낮으로 전화를 하는 그들을 보면 2년 전 작고한 할머니가 생각나 더 열심히 뛰었다.
위기에 봉착해도 힘든 시기가 닥쳐도 젊은 패기로 ‘앞으로 전진’(Move On)을 외치는 그는 이민 1세들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래서 류 당선자는 이번 선거의 승리가 아웃사이더의 훈장이자 소수계인 한인 커뮤니티의 단결된 힘을 보여준 것으로 믿는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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