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비 없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복보다 힘든 곳
▶ “우리 삶에 힘든 구간 생략하고 성공하는 길은 없다”... “순전히 내 힘으로 내 꿈을 이루고 싶었다” 소감 밝혀
타미 콜드웰(왼쪽)과 케빈 조르게슨이 맨손 암벽등반으로 엘 캐피탄 정상에 오른 후 축배를 들고 있다.
[요세미티 엘 캐피탄 수직암벽 ‘맨손등반’ 성공한 두 사나이]
2015년 1월14일 오후 3시25분. 세계 암벽등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미국인 암벽등반가인 타미 콜드웰(36)과 케빈 조르게슨(30)이 사상 최초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상징인 엘 캐피탄의 수직암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른 것. 2014년 12월27일 엘 캐피탄의 널찍한 이마에 해당하는 직벽인 ‘돈 월’(Dawn Wall)에 도전한 지 19일 만에 거둔 쾌거였다.
사실 엘 캐피탄은 에베레스트나 맥킨리처럼 오르기 힘든 고산이 아니다. 정상까지의 높이는 해발 7,569피트이고, 콜드웰과 조르게슨이 맨손 등정에 성공한 돈 월은 3,000피트다.
하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세배에 달하는 키를 지닌 돈 월을 맨손으로 등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31개 피치(구간)로 나누어진 이곳은 벽면이 워낙 가파른데다 손이나 발을 끼우거나 걸칠 틈새가 그리 많지 않다. 31개 피치 가운데 두곳의 난이도는 5.14d. 한마디로 최고수준이다.
높이 30피트 이상의 피치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횡단 등반을 해야 하는 두 개의 가파른 연결 암벽도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다이노’를 해야 하는 곳도 있다.
다이노는 다음 손걸이를 붙잡기 위해 몸을 날리는 허공점프로 늘 추락의 위험을 동반한다.
돈 월의 평균 등반 난이도가 5.12라는 사실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오르기 힘든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돈 월 등반이 보조장비의 도움 없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가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는 주장이 정설로 통한다. 사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는 몸을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틈새와 턱이 돈 월에 비해 훨씬 많다.
콜로라도주 이스테스 팍 출신인 콜드웰에게 돈 월은 10여년간 마음속에 품어온 인생의 지상목표였다. 수직암벽 돈 월에 대한 그의 끈질긴 집착은 허만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딕’에서 흰고래를 잡기 위해 대양을 누비는 외다리 선장 에이허브를 떠올리게 만든다.
콜드웰과 함께 엘 캐피탄을 맨손으로 정복한 조르게슨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로사가 낳은 최고의 클라이머다.
조르게슨은 2009년 콜드웰을 찾아가 자신을 돈 월 등반 파트너로 받아들여 줄 것인지 의사를 타진했고 그 이후 둘은 매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가을과 겨울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돈 월 직벽에 매달려 손과 발을 걸칠만한 틈새를 찾고, 피치를 연구하며 맨손등반의 전술과 전략을 가다듬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콜드웰과 조르게슨은 겨울철을 택해 ‘마의 벽’에 도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온이 높으면 손과 발에 땀이 나서 아무래도 미끄러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들이 19일간의 등반기간 줄곧 낮에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진 후에야 바위를 붙잡고 매달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맨손 등반을 하다보면 날카로운 바위를 붙들고 열 손가락에 의지해 몸 전체를 끌어올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보면 체력은 급속히 동이 나고 손가락은 불과 며칠 만에 너덜너덜하게 헤어진다.
이 때문에 31개 피치를 맨손으로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더구나 2001년 톱에 왼손 검지가 잘려나간 콜드웰의 도전은 누가 보아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돈 월에 도전한 암벽 전문 등반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기껏해야 서너 구간을 오른 후 지상으로 내려왔다.
콜드웰과 조르게슨도 2009년 파트너 관계를 맺은 후 두 번 ‘마의 벽’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10년에는 3분의 1쯤 올라간 지점에서 폭풍우를 만나 물러섰고 1년 뒤 재도전에서는 조르게슨이 추락해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포기했다.
엘 캐피탄 정상으로 이어지는 돈 월은 물론 처녀지가 아니다. 암벽 등반 짝패인 워렌 하딩과 딘 콜드웰은 1970년 돈 월의 수직벽을 타고 27일 만에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엘 캐피탄의 정상에 섰다. 돈 월 루트를 이용한 최초의 암벽 등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암벽에 300개 이상의 고리못을 박았고 수백 피트 길이의 로프를 이용했다.
과도한 장비사용으로 심각한 자연훼손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뒤이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에 이어 돈 월의 직벽에 도전한 로열 로빈스는 기구사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쟁자인 하딩이 박아놓은 고리못 가운데 상당수를 제거했다.
1970년 이후 기구를 이용해 암벽을 타고 엘캐피탄에 오르는 100여개의 루트가 개발됐지만 프리 클라이밍을 통해 돈 월을 정복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일반적 인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45년 전 돈 월의 직벽을 타고 엘 캐피탄 정상에 도달한 하딩은 기다리고 있던 축하객들부터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내가 미쳤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제 정신이었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무모한 짓이라는 뜻이다.
콜드웰과 조르게슨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둘이 정상을 밟았을 당시 그곳에는 취재진을 비롯, 200여명의 인파가 모여 있었다. 산 아래에서 엘 캐피탄 정상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의 길이는 총 8마일 정도. 오전에 산행에 나서면 정상에서 휴식을 취한 후 해질녘까지 출발지점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는 거리다.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기 위해 원근 각지의 산사람들과 아랫마을 주민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상최초로 돈 월 맨손등반에 성공한 콜드웰은 “왜”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평소 큰 꿈을 꾸길 즐겨했다”며 “내 스스로 탐험가가 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모든 것이 안전포장을 거쳐 경고 사인까지 붙은 상태로 주어지는 것 같다”며 “돈 월은 내가 내 힘으로 꼭 해내고 싶었던 삶의 과제였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조르게슨은 등반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횡단등반을 요구하는 15번 구간에서 7일간 열 차례의 실패를 맛보았다. 날카로운 바위를 잡았다가 손가락 끝에 심한 상처를 입어 이틀간 휴식을 취해야 했고 다이노를 시도하다 떨어지기도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허리춤에 느슨하게 묶어 고리못에 연결한 로프 덕에 간신히 추락사는 면했지만, 떨어질 때마다 물리적·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힘든 구간을 건너뛰고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치 15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돌파해야 할 관문이었다.
조르게슨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품은 비밀스런 돈 월이 있게 마련”이라며 “우리의 이번 등반 프로젝트를 계기로 당신 인생의 문맥속에서 당신만의 돈 월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타미도 우리 앞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살다보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그때마다 돈 월과의 싸움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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