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양?
양은 시력이 나쁘고, 쉽게 속고, 분별력이 없다. 무엇인가 눈 앞에서 움직이면 무조건 그것을 따라간다. 양치기 개가 주변에서 뛰어다니면 목동인줄 착각하고 쫓아간다. 양은 다리가 연약하여 잘 넘어지고, 넘어져 뒤집히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줄 때까지 그대로 누워 있는다. 일으켜 세워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때문에 한동안 붙들어줘야 똑바로 걷는다. 나쁜 시력으로 인해 양은 방향감각이 없고,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능력이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지닌 양, 맹수에게 먹혀 이미 멸종되었어야 할 동물이지만, 아직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양치기가 돌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치기의 돌봄을 받은 양은 행복할까. 고대 그리스의 현인 트라시마코스는 “법과규율은 권력을 지닌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에 순응하는 것은 권력자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양치기가 양을 관리하는 것은 그들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위함이다. 양의 입장에서 보면, 울타리 밖의 자유 세계로 도망치지 않고 양치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양치기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이다.
바깥 세상이 얼마나 넓은 줄도 모르고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채 울타리 안에서 맴돌아야 하는 양의 현실이 K-12 울타리 안에 있는 학생에게도 나타난다. 사리판단, 자립정신, 자조성 등 사회에서 살아 남는데 필요한 것을 준비시켜준다는 이유로 학교는 양치기가 양을 돌보듯 학생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삶의 생기를 불어넣고, 개개인의 끼를 살려야 할 학교가 길고 짧음을 성적만으로 평가한 결과, 대부분 학생들이 패배와 좌절을 겪고 있다. 그런 무기력과 왜소화에 길들여진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방황이다.
양은 홀로 설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인간은 울타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최면에 걸린 듯, 아무런 저항 없이 순한 양처럼 이끌려 다녀야 하는 시절은 지났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하하는 시절은 지났다. 학교에서 교육받지 않은 학생을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하는 시절도 지났다.
산업혁명은 인간을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시켰지만, 인터넷 혁명은 개인이 움트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 올해 8살이 된 이반은 자신이 즐겨 쓰는 장난감을 평가,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130만 달러를 벌었다. 중학교 때 웹디자인 방법을 독학으로 배운 오웬은 애플 컴퓨터 이용자를 위한 웹사이트를 주문 제작함으로써 16세가 되는 지난 한해 동안 1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16세가 된 애덤은 친구 몇 명과 함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만들고, 온라인에서 어린이를 보호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400만 달러 매상을 기록했다. 이반, 오웬, 애덤이 보여준 것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K-12시스템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온순한 사람을 순한 양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양의 한쪽 면만 본 결과다. 양은 고집이 세고, 한번 화가 나면 주변에 있는 양이나 양치기를 들이받기도 한다. 특히 숫양을 뜻하는 ram은 “충동, 과격, 맹렬”이란 뜻을 내포하며, 굳게 닫힌 성문을 부수는 공격 무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몫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학교 울타리 밖에서 그런 양들의 끼가 움트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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