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한국 극장가에서 흥행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신파극의 고전 같다. 포스터에도 치마와 바지를 때깔 맞춰 ‘커플 한복’으로 차려입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한다. ‘76년 일생의 연인 우리 참 잘 살았죠?’라는 문구가 전부인 진모영 감독의 86분짜리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 그런데 이 영화가 지난 주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독립 다큐 영화로는 기적의 흥행 행진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예매 관객 연령대 중 20대 비율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통계다.
진모영 감독이 이 영화를 다큐로 만든 이유는 별다르지 않다. 강원도 횡성 지역신문에서 장날마다 커플 한복을 입고 손잡고 다니는 부부가 소개됐고 2011년 KBS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에 조병만(98)·강계열(89)씨 부부가 등장했다. 이를 본 감독은 노부부의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1년 3개월간 틈틈이 찾아가 400시간 정도 촬영을 했다. 영화 속 커플 한복이 감독의 연출이 아니었고 다 큰 자식들이 모두 그 강을 건너 곁을 떠났고 부부만 남게 됐다는 말을 듣고 어느 날 문득 ‘언젠가 할아버지도 그 강을 건너 할머니를 떠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 제목으로 부쳤다고 한다. 촬영 도중 할아버지가 진짜 가신 것도 순리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다.
이런 노부부의 사랑에 20대 관객들이 열광한다. 가난했던 시절엔 그런 차림을 못했다가 형편이 좋아진 70대 이후 커플 한복을 입었다는 노부부의 사랑이 부럽단다. 그렇게 ‘예쁘게’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현실에서 별로 보지 못한 탓도 있다.
‘썸맥’(썸을 타다와 인맥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넓고 얕고 짧은’ 인간관계에 익숙한 20대에게 커플 한복 사랑은 동경의 대상이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힘든 세상이라 ‘3포(3가지 포기) 세대’가 된 30대에게 76년의 사랑은 머나먼 강이다. ‘이십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그냥 가족이지’하는 40대에게도 손바닥에 불을 쪼여 머리를 데워(?)주는 애정표현은 머쓱할 뿐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올 연말 가족, 연인과 함께 보는 영화가 된 이유다.
올해도 2주 남짓 남았다. 강을 건너버린 고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을 돌아봐야할 시기다. 님을 곁에 둔 사람도, 님을 보내버린 사람도, 그리고 님이 없는 사람도 그 강을 건너기 전에 순간순간의 사랑에 충실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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