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십수년 전 LA의 헐리웃 Blvd.에 별난 건물이 있었다. 거꾸로 가는 시계를 입에 물고 포효하는 공룡 광고조형물이 지붕에 서 있었다. 출근길에 늘상 지나다닌 이 건물은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Ripley’s Believe It Or Not)’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표기가 ‘Auditorium’이 아닌 ‘Odditorium’이다. 전시물이 모두 ‘진기하다(Odd)’는 의미다.
한국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어 화제가 된 사람이 있었다. 속초의 시계수리공 양종문씨다. 그는 손목시계든, 괘종시계든 전자시계든 감쪽같이 거꾸로 돌도록 바꿔놔 지난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됐었다. 그는 왼쪽으로 도는 시계를 36년 전 21세 때부터 만들어왔다며 “기네스북에 한번 나가보고 싶은데 절차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씨에겐 기네스북이 아닌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가 잘 어울린다. 기네스북은 특정분야의 최고기록 보유자들을 소개하지만 리플리는 기괴한 사물, 초자연적 현상, 전무후무할 미스터리 사건 등을 다룬다. 머리 둘 달린 송아지, 외눈박이 염소, 전기의자에 앉아 처형 받고도 살아난 사람, 껌 포장지로 엮어 만든 에베레스트 산 높이보다 두 배 긴 사슬 따위다.
나는 리플리를 헐리웃 박물관에 앞서 TV를 보고 먼저 알았다. 1980년대 매주 방영된 ‘믿거나, 말거나’ 시리즈에 매료됐었다. 잭 팔란스가 호스트였다. 서부명화 ‘셰인’의 끝부분에서 앨런 래드와 맞대결했다가 죽은 악당 총잡이다. 노년의 그는 인상이 매우 온화했다. 프로그램 에필로그를 이민자(폴랜드)답게 늘 “빌리빗…오어 놋트”라고 발음한 게 인상적이다.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는 로버트 리플리가 세운 프랜차이즈 회사다. 1900년대 초 뉴욕 신문에 진기한 스포츠기록을 중심으로 그린 만평 같은 쪽 그림(패널)이 효시였다. 이 연재패널이 큰 인기를 끌자 그는 1919년 ‘챔프와 얼간이’었던 타이틀을 ‘믿거나 말거나’로 바꿨고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만화, 라디오, TV, 영화, 박물관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했다.
리플리는 1949년 59세로 사망할 때까지 사진 2만여 점, 예술품 3만여 점, 패널그림 10만여 점 등을 수집했다. 세계 198개국을 35년간 돌아다니며 진기한 물건들을 사 모았고 살 수 없는 것들은 패널로 그리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1960년대 한국에도 찾아가 삿갓 쓴 노인, 지게꾼, 거북선(세계최초 철갑선)과 IQ 210의 천재소년 김응용 등을 소개했다.
그의 수집품들은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처음 전시돼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포스터에 “기절하는 관객이 많아 침대도 마련했다”고 허풍떨었다. 첫 박물관은 그가 죽은 다음해 플로리다주 St. 오거스틴에 개설됐다. 그 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11개국에 32개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마지막 32번째가 지난 2010년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에 개설됐다.
제주도 리플리 박물관엔 못 가봤지만 성냥개비로 만든 집과 배, 인류사상 키가 가장 컸던(8피트 11인치) 미국인 로버트 왜들로의 손 모형, 종이로 만든 자동차, 차체를 동전으로 덮은 자동차, 못으로 만든 무스, 엘비스 프레슬리 머리카락, 하반신 없는 남자, 50시간 연속 악수기록을 세운 강호동 사진 등이 전시돼 있는데 관람객들이 몰린단다. 믿거나 말거나다
중문에도 있는 리플리 박물관이 시애틀엔 없다. 하지만 지금 시애틀센터의 퍼시픽 과학센터에서 중문 것보다 훨씬 다양한 리플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왜들로의 실물대 인형도 있다. 입 안에 어른 셋이 들어갈 수 있는 6,000만년 전의 55피트짜리 ‘티타노보아’ 뱀, 100만개의 성냥개비로 만든 롤스로이스, 빵으로 만든 아인슈타인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한 잠수부가 배 안에서 14명을 구조해 냈는데 그 배는 5년전 침몰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괴담이 있다. 당연히 세월호가 연상된다. 5년의 10분의1인 6개월 전에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젊은이들을 구조해낸다면 60여년 전에 죽은 리플리도 쾌재를 부를 터이다. 내년 1월까지 계속되는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시애틀 과학 전시회’를 관람하시도록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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