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한탁씨 사건 25년
▶ 우울증 딸과 기도원에… 화재… 방화·살해혐의 종신형… 검찰측 증거 기각
수감 25년만에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이한탁씨의 모습. <연합>
친딸 방화살해 누명을 쓰기 전 젊은 시절의 이한탁씨 모습. <뉴시스>
화재로 딸을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지는데 딸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린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지난 1989년 펜실베니아주의 한 교회 수양관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사고는 한 가족을 철저히 파멸시켰다.
1989년 7월29일 오전 3시께. 펜실베니아주 먼로카운티 헤브론 수양관 건물에서 돌연 화재가 발생했다. 이곳엔 이한탁씨(당시 54세)와 큰딸 지연씨(당시 20세)가 있었다.
철도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1978년 뉴욕에 이민 온 이씨는 퀸즈 엘머스트에서 아내와 두 딸 등 가족과 함께 맨해턴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그러나 지연씨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됐다.
다니던 교회에서 기도를 권유받은 이씨는 사건 전날 지연씨와 함께 포코노의 수양관으로 갔다. 이 길이 이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길이 되고 말았다.
수양관 숙소에서 취침한 이씨는 오전 3시께 매캐한 연기냄새에 잠을 깼다. 화재였다. 황급히 소지품을 들고 밖으로 탈출했다가 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들어갔으나 내부에는 검은 연기로 가득했고 눈을 뜰 수도 없었다.
결국 지연씨는 화장실 앞, 붕괴된 지붕 잔해 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초 화재 원인은 숙소가 낡은 건물이라 누전 때문인 것으로 판단됐으나 수사과정에서 방화 사건으로 바뀌었다.
검찰은 이씨가 짐을 챙겨 나왔고 평상복 차림에 발화물질이 묻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범인으로 지목했다 검찰은 지연씨가 우울증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다는 배경을 살인동기로 몰아갔고 이씨가 64갤런의 발화성 물질을 숙소 내부에 뿌려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졸지에 딸을 죽인 아버지가 된 이씨는 선임한 변호사의 판단착오까지 겹치며 검찰 측의 주장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배심원단은 유죄평결을 내렸고 이씨는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이후 변호사를 네 차례나 바꾸면서 재심과 항소를 반복했지만 그때마다 ‘검찰의 증거를 번복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씨의 사연이 한인사회에 알려지면서 2000년대 초 이한탁구명위원회가 구성됐고,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자임, 이씨의 무죄 입증에 전력투구했다.
마침내 지난해 “이씨의 바지에 묻어 있던 것은 발화물질로 보기 어렵다”며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해 온 화재 감식 전문가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가 증거로 공식 채택됐다.
연방 항소법원에서 마지막 항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법원은 지난 7일 이씨의 유죄 평결과 형량을 무효화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지난 19일 석방을 명령했다. 딸을 죽인 아빠라는 억울한 누명과 함께 25년을 갇혀 있던 이씨의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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