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성학 장로(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 개척자, 1882-1961)가 3•1절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올해 95주년3•1절을 맞아 한국 국가보훈처가 포상하는 독립유공자 106명 중 애족장을 받게 된 조성학 장로는 독립운동가로, 독립운동자금 후원자로 적극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성학 장로는 1907년 상항교회에서 야학을 주도하며 배움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청년운동가였다. 그는 민족현실과 세계문명, 신앙과 복음에 대해 강조하며 청년들에게 진정한 배움을 일깨웠다. 그는 27세의 나이에 소살리토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주장한 것을 몸소 실천했으며 동양인 배척으로 학교에서 그를 퇴학시키자 당당히 변호사를 선임하여 인종차별적 처사를 항의하기도 했다.
1910년 한일합방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그는 대한인국민회에서 애국동맹단을 결성, 북미지방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14년 오클랜드로 이사온 조성학 장로는 문원칠씨와 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를 개척했고 임정구 목사와 함께 민족운동을 펼쳤다. 서재필 선생의 외교활동비를 후원했고 신한민보 오클랜드 통신원으로 한인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또 1928년 대한인국민회 오클랜드지방회를 결성해 나라독립과 이민자들의 권익보호에 헌신했다.
이후 리들리로 이주한 조성학 장로는 1961년 5월 리들리교회 장로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후손들은 현재 멘도시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주 기자>
초기 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 기초를 마련한 조성학 장로, 초대 황사용 목사, 2대 임정구 목사(왼쪽부터). <사진 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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