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듯 펑펑 써도 남는 게 세월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얼마 남은지 알길 없는 시간이 소중하다. 읽고 싶었던 책들의 목록이 태산처럼 쌓여있어 조바심이 난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톨스토이도 다 못읽었고 마크 트웨인, 스타인벡도 다시 읽고 싶다.
짬짬이 돌아서서 밥 한술 입에 넣는 애기 엄마처럼 최근 며칠간 서머셑 모옴의 인간의 굴레와 브론테의 제인 에어 를 읽었다. 19세기의 영국은 정말 비참하다. 비록 자신들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었다지만 너무나 많은 무산계급의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학대와 핍박을 받았다. 툭하면 조실부모한 고아들이 생기고 얼굴도 못본 친척에게 맡겨진 아이들은 갖은 학대속에 망가져 간다. 다감하고 영리한 어린아이가 미움에 가득찬 눈길 앞에서 어떻게 파들파들 떨며 망가지는지 그 많은 소설속에 생생히 쓰여있다. 그러다 또다시 얼굴도 못본 친척이 유산을 남겨줘 갑자기 새로운 신분으로 밝은 세상에 들어서는 이야기. 돈이 뭔지.. 인도의 캐스트 제도가 무섭다 하지만 그 시절 영국의 사회도 더 나을 것 없다. 조카 결혼식에 갔다가 동창들을 만났는데 어느 동창의 며느리가 아이를 낳다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새도 애낳다 죽는 수가 있어? 하고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태어 난 아이는 둘째라는데 그 역시 두 아이가 있는 죽은 애엄마의 언니가 자신이 키우겠다고 두 애를 데려갔단다. 이즈음은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깨어있어 터무니없는 학대는 벌어지지 않겠지만 애 키우는 게 워낙 어렵고 힘든 일이라 남의 일이라도 남의 일 같지 않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동생을 봤는데 한국에 갔다가 예전의 우리 집 주소를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생각이 안나 마침 그 옆에 있던,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에 들러 옛주소도 확인 하며 겸사겸사 생활기록부 카피까지 떼왔단다. 그 시절 한 학급에 근 백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한 학생, 한 학생의 특징을 써 놨는지 감탄을 하며 내 것을 건네준다. 2학년때 선생님은 갓 학교를 졸업한 땅딸막하고 기운 펄펄한 여자 선생이었는데 그 선생님한테 허구헌날 무지하게 두들겨 맞은 기억 때문에 간혹 그 분이 어떻게 사나 궁금했던 분이었다. ‘말이 없고 명랑성 부족. 게으르고 매사에 성의가 없으며 교우와 융합하지 못하며 단체생활에 이탈되는 행동이 엿보인다. 미술에 특별한 소질이 있음.’집이 무서워 어디로든 도망치고만 싶었던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엄마와 동맹군 같아 무섭기만 했다. 집에 가기가 무서워 길을 헤메다가 길에서 깔깔 웃는 구두닦이 소년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면 너는 나보다 행복하구나, 웃을 수 있으니.. 생각했다. 받아쓰기 숙제를 열심히 해와도 시험보면 다 틀리는 애들이 이해가 안됐던 나는 되풀이 쓰지 않아도 철자법을 전혀 틀리지 않는 내가 왜 그 바보들 하고 똑 같이 숙제를 해야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규칙이구나. 나는 잘못된 사회규범에 의해 핍박받는 순교자구나.. 힘이 없는 어린 애는 묵묵히 그 모진 매를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상처입은 작은 동물은 자신의 상처를 핥는 게 바빠 동료들과 놀이 할 여력이 없다. 많은 책을 읽으며 오로지 공상속에서나 위로를 받던 나는 집을 나서면 학교가기가 무서웠고 학교를 나서면 집에 가기가 무서웠다. 기록을 보니 그 무섭던 선생이 삼년이나 담임이었다. 아마 그 삼년은 내게 영겁 같았을 게다. 6학년 때 선생님은 호랑이로 소문난 선생이었다. 어느 날 장래의 희망을 묻는 시간에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니까 너무도 좋아하시며 네가 작가가 되면 난 너를 가르쳤다고 자랑하고 다닐꺼라고 하시던게 늘 고마운 기억으로 남던 분이다. 그 분이 쓴 나의 생활 기록. ‘명랑 쾌활하며 재간이 많아 그림 글씨 등 뛰어나고 창조력이 풍부, 이지적이고 책임감이 있고 수리적 두뇌도 뛰어나며 태도가 공손하고 양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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