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회색 건물들이 길 양쪽으로 꽉 들어서서 좀 삭막해 보였던 코스코 가는 길이 오늘은 온통 연두색으로 물들어 완전 다른 길처럼 보였다. 이 길을 지난 것이 일주일도 채 안된 것 같은데 그 사이 벌써 계절이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다니던 길인데도 오히려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동네주변 어떤 코너에서는 자스민 향내가 진하게 돈다. 걸어다니다가 남의 집 울타리를 타고 자라난 자스민에 코를 킁킁거린다.
봄은 조금 애매모호한 계절이다. 특히 4계절 내내 꽃이 피는 캘리포니아에서는 꽃의 시작을 봄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고 한국에서처럼 개나리를 보고 개학식을 자연스레 연관시킬 수도 없다. 여름이나 겨울은 날씨가 분명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북가주의 가을은 붉은 나뭇잎과 거리를 돌아다닐 때 마른 낙엽이 발에 밟혀 부서지는 소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요 며칠간의 더위는 봄보다는 여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북가주의 평소 날씨 변덕 때문에 믿을 수 없다.
봄은 기분상 알 수 있는 계절인 것 같다. 봄이 되면 여자들은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네일 트렌드는 파스텔 계열의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들이다. 엄마가 그랬다. 봄은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파워가 있는 적당한 바람이라고.
벗꽃이 나무에 활짝 피어 나뭇가지들을 뒤덮어버린다. 벗꽃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예쁘다. 한국에 살았을 때 우리 초등학교 앞에 한 조그만한 가로수길은 양 옆으로 벗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봄이 오면 그 길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벗꽃이 만발할 때 걸으면 벗꽃잎이 눈처럼 바람에 실려 우수수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그 길을 걷고 나서는 머리에 살포시 얹쳐진 꽃잎들을 서로 떼어주곤 했었다. 이번 주말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에서 벗꽃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나도 꽃단장을 하고 나가봐야겠다. 꽃구경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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