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책을, 그것도 두꺼운 책을 집어 들다니, 어쩌면 내 삶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나 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그림은 벨라스케스 디에고의 <시녀들>이다. 책 제목도 흥미로웠지만,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표지 그림의 제일 왼쪽에 있는 마르가리타 왕녀가 아닌 누가 봐도 못생긴 난쟁이 시녀에 조명을 비추었다는 점이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소설의 작가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본래 그림의 왕녀가 아닌 가장 구석지고 못생긴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인간의 속성을 재조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부러워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부유함을 부러워하고, 빈곤함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들, 다시 말하자면 남들이 가진 걸 부러워하고, 나에게 없는걸 부끄러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아름다워지고자 하고 끊임없이 가지고자 하고, 스펙 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 다들 온 열정을 쏟는 세상을 비꼬는 듯 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처럼 우리, 절대 다수는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다가 패배자가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남들이 볼 때 ‘좋은 것’, 그러니까 부러워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여기며 다수가 좋다고 하는 것을 향해 얼마나 열심히 부질없이 또 끝내는 허망하게 달려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결코 나에게도 만족이란 없는 건 아닌지 씁쓸한 기분도 든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누가 봐도 빛나는 ‘그’는 누가 봐도 추녀인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빛을 잃고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온 ‘그녀’가 남들이 부럽지 않다고, 그리고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과 싸우기에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약하고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에 읽는 내내 마음이 씁쓸했다.
아무리 대단한 미녀나 대단한 부를 가진 권력자라도 내가 ‘시시한 걸.’ 하며 피식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집단의 선호가 개인의 선택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세월 지나 늙고 난 후에 거기서 거기인 얼굴을 지니게 되니, 외모와 부는 생활의 일부일 뿐 삶의 일부는 분명 아닐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