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나와 10년 터울 동생 건(建)이를 “맥가이버 삼촌”이라 부른다. 맥가이버는 십수년 전, 미국에서 한창 인기가 높았던 스파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과묵하고 수수한 젊은이지만, 비상한 손재주와 임기응변력으로 그는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주위에 널려진 일상적인 물건이나 폐품들을 이용, 적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히어로였다.
동생, 건이도 맥가이버처럼 어릴때부터 작은 기계들에 호기심이 많았다. 공부보다는 시계나 소형 전기기들을 뜯어 하루종일 속을 들여다보곤 다시 맞춰놓곤 했었다. 나와 나이 차가 큰 탓에 우리는 함께 한 지붕아래 오래 살질 못했다. 녀석이 철들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이미 대학 기숙사로 떠났고, 가끔 집엘 와도 나는 어렸던 그에게 심부름외엔 정겹고 따뜻한 대화한번 해본 기억이 없다. 내가 유학을 떠나오던 해, 그는 막 중학생이 되었는데 나는 그에게 하나밖에 없는 친형이라기 보다 먼 친척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동생, 건이를 생각하면 그 큰 두눈에 흥건히 고이던 눈물을 잊지못한다. 내가 미국 가는 날, 공항에 가족들과 배웅을 나왔던 그가 말했다. “형, 엄마와 우리 생각나면 이거 틀어봐..” 그는 제가 손수 녹음한 가족들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자랑스레 건네주었다. ““형 생각나면 나도 들을꺼야,,.” 그날도 그는 내가 물려준 구형 녹음기를 신주보따리 처럼 가슴에 품고 나왔었다.
내가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형없는 아이처럼 혼자 자랐다. 집안의 끊이지 않았던 대소사에 세 남매를 거느린 어머니와 함께 장남노릇을 하며 살았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살기가 힘겨웠던 시절, 그는 길섶의 엉겅퀴처럼, 바위산 갈대처럼 세파에 부딪치며 살아내었다. 그러나 배우 송승헌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6척 장신 미남형에 성실하고 착한 심성의 그는 군대에서나 학교에서나 주위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도움을 받았다. 그 무렵 그가 쓴 편지구절이 생각난다. “형, 우리 식구들 잘지내, 걱정마. 형은 나의 희망이자 꿈이야. 힘내”
그가 제대를 하고 신참 건축기사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마침내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오자마자 혈육끼리 나누지 못했던 정을 쏟아내듯, 초등학생인 우리 큰 아들놈을 제 자식처럼 한방에서 뒹굴며 지냈다. 그러면서 전기선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공구를 어떻게 쓰는지, 새집은 어떻게 짓는지를 가르쳐주었다. 큰 아들놈은 삼촌을 아빠보다 더 따랐다.
돌아보면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이십오년도 더 넘는 그 아득한 세월동안 건이는 한국에서 착한 아내가 오고, 예쁜 두 딸을 낳아 전문인들로 성장시켰다. 그는 LA로 터전을 옮겨 굴지의 항공선박 회사에 입사한 후 승진을 거듭 경영팀장으로 심혈을 바쳐 일했다. 그런데 너무도 열심히 일한 탓인지 그 건장하던 몸에 병이 생겼다.
건이가 큰 수술을 받는 동안 아들녀석이 뉴욕에서 단숨에 달려왔다. 맨하턴 병원에서 암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은 삼촌의 수술을 담당의와 상의하며 주도면밀하게 지켜주었다. 그리고 퇴원하기 전 날, 그는 재료상엘 달려가 나무, 끈, 스프링, 스타이로폼들을 사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수술부위가 아픈 삼촌이 몸의 각도를 달리해 누울 수 있는 환자용 침대를 만든것이었다. 벽에다 두손으로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쇠핸들도 단단히 박아놓았다.
따뜻한 물을 데워 수술후 처음 삼촌을 목욕시키는 아들녀석에게 삼촌이 물었다. “그 침대때문에 어젠 통증이 와도 잠을 잘 잤단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걸 배웠니?” 아들녀석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삼촌한테 배웠쟎아요. 맥가이버 삼촌한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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