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가 나던 해,나는 열두살,작은 언니는 갓 스무살의 처녀였다.나는 중학교 일학년생,언니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연주창이란 병이 생겨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그 당시 우리 가족은 모두 작은 피난 짐을 꾸려서 인천 집에서 삼십리 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우리 농장으로 피난을 갔었다.
당시만 해도 부평 읍으로 불리우던 그곳은 지금은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으로 바뀌었다.과수원이 있던 뒷산은 계양산으로 그 주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어서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주변이 꽃들과 나무 숲으로 명실공히 인천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강산이 여섯번도 더 바뀌었으니 그곳은 계양산만 빼고는 하나도 옛날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지금은 전철까지 들어와 있었다.몇년전 친구들과 그곳을 방문했을때 바로 산 아래 자락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옛날 우리 농장을 와봤던 친구들과 세월의 무심함을 다시 한번 얘기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기해 보았다.
작은 언니의 병은 그후 장장 수년을 끌어서 어머니는 물론이려니와 식구들 모두의 근심꺼리였다.처음에 시작한 폐병이 연주창으로 옮겨지고 다시 그 병은 뇌막염으로 까지 가서, 거의 죽음 직전까지 직면해서 언니는 한때 죽었다고 온동네 소문이 났었고 실제로 어머니는 수의까지 지어 놓으셨었다.
작은 언니는 병이 조금 차도가 보일때면 창가에 앉아 가끔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그 중에 데니보이며,그 집 앞,바위고개가 어린 나에게도 너무 슬프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했다.그때 나는 슬픈 중에도 언니의 노래를 몰래 따라 부르곤 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언니의 애창곡은 나의 애창곡이 되어 데니보이나 바위고개들을 지금껏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이다.그후 거의 죽어갔던 언니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 팔십 둘인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작은 언니도 그 또래 많은 여자들의 생애가 그랬던 것 처럼 만만찮은 삶을 살아 오셨다.
몇년전 한국을 방문했을때 마침 언니가 그 지역구에서 노래자랑에 뽑혀 마지막 대회에 나가신다고 해서 올캐와 함께 그곳에 간적이 있다.언니의 차례가 되었을때,지금은 절름발이가 된 언니가 다리를 절며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난적이 있다.
언니는 내가 깜짝 놀랄만큼 노래를 잘해서 그날 최우수상까지 타셨다.우리 형제들이 모두 한 옥타브가 높은 소프라노들인데, 언니는 음정이며 가사며 감정까지 거의 완벽할만큼 소화릏 해서 그곳에 참석했던 모든 청중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언니가 다리를 절룩이며 무대로 향할때 모든 사람들의 민망했던 시선들이 놀라움과 감탄의 시선으로 바뀌던 것을 나는 지금도 일말의 감격으로 기억한다.아마 피를 나눈 형제애는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보통때는 잊고 지나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 가슴 저리는 그 정,그것은 아마 피를 나눈 사이만 알수 있는 그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뜨거운 무언가를 진하게 느끼는 그런 것일께다.
가끔 이곳에서도 친구들이 뫃일때면 밥을 먹은후 가라오케를 틀고 노래들을 부른다.잘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뜨거운 열기는 같다.모두들 목청 높여 열창을 한다.마치 한풀이를 하는 사람들 처럼 옛날을 노래하고 향수를 부른다.처음에는 못한다고 사양을 하던 친구들도 마지막에는 서로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난리들이다.그렇듯 한차례 노래들을 열창하면 속이 풀리고 스트레스도 날린다.아마 우리 한국인들 처럼 노래를 사랑하는 국민도 드믈 것이다.
그날 작은 언니가 불렀던 노래는 김주리인가 하는 가수가 부른 /립스틱 짙게 바르고/였던것 같다./나팔꽃 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 없는 사랑아!/노래는 그렇게 시작되었던것 같다.
나도 이제 그 노래를 부를때면 멀리 고국에 있는 작은 언니를 생각하며 부른다.부디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셔서 더 많은 노래자랑도 나가시고 상도 타시고 행복하셨으면 싶다.젊은 날 작은 언니가 불렀던 슬픈 노래들은 지금도 세월의 시공을 넘어 내 마음에 한 자락 메아리가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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