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돈 봉투’로 인해서 신문지면이 어지러운 것을 보니, ‘촌지’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촌지란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난 작은 정성을 표시하는 작은 선물’이다. 진정한 촌지는 우리가 어렸을 때, 특히 학년이 바뀔 때, 일 년 동안 수고해 주신 담임 선생님에게 드리는 학부모들의 정성어린 작은 선물에 대하여 많이 적용되던 단어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반의 자모회장이었는데, 촌지를 모으기 위해서 다른 학부모들의 집을 방문했다.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이해를 못하겠어. 많이 보태지 못한다고 미안해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정말 이상한 학부모도 있더라구. 내가 무슨 빚을 받으러 간 것도 아니고…. 정말, 기분 나빴어.”
다음 날 학교에 가니 한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으면 자기들이나 돈을 낼 일이지, 어째서 다른 부모에게 돈을 거두어서 자모회장이 생색을 내느냐구?” ‘아하, 저 친구의 부모가 우리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로군.’ 이렇게 짐작했으나, 나는 그 친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 선생님께 전하는 ‘촌지’의 형태가 점차 변해갔다. 불평을 하던 친구의 말대로, 각자가 선생님께 ‘촌지’를 표시했는데, ‘촌지’를 전하는 시기가 학년 말이 아니라,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학기 초로 변화 되었다. 그리고 ‘작은 정성’은 뇌물성의 ‘봉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전해지는 ‘봉투’는 당연한 듯이 공공연히 행해질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 전하는 ‘봉투’를 아이들의 손에 직접 들고 가게 하는 학부모도 생겨났다. 그런가하면, 가정 사정으로 인해서 ‘봉투’를 전하지 못하는 부모는, 일말의 불안한 마음,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가 무슨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염려하기도 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된 ‘촌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그와 같은 인사를 차리지 않는 사람이 때로는 예의에 어긋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작은 정성’은 그 액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주고받는 ‘봉투’에 대한 경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조차도 흔히 있는 일이 되었다.
입법, 사법, 행정을 담당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급의 인사들이 연관된 ‘뇌물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거의 해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현찰이 가득 들었다는 ‘사과상자’의 이야기며,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전하기도 한다는 ‘돈 봉투’의 이야기가 신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한다. 액수가 늘어난 뇌물의 소식을 자주 듣다보니, 듣는 사람들의 감각도 무디어진다.
지금,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부패한 형태는, 도를 지나쳤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이것은, 뇌물성 ‘돈 봉투’로 변해버린 ‘촌지’를 일상적으로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 이제는 이 사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뇌물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저지르는 행위이다. 이러한 형태가 사회의 전 지역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일으킨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계, 나라를 지키는 군대, 건실하다고 믿었던 노동계, 심지어는 순진해야 할 초등학생들 사이도 만연하는 ‘갈취’의 형태는 조폭의 어린 싹을 보는듯 하다.
지역사회란, 그 안에 살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회이다. 누구를 탓하거나,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개인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양심이 모이고 모여 결국에는 하나의 단위,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모습이 그 나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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