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이제는 시(詩)가 죽어가는 시대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관객들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원로 배우 윤정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시(詩)>를 만든 이창동 감독의 말이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았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된 시대가 되어버렸다. 동네 쇼핑 센터마다 하나씩 있던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매일 보며 지나 다닌다. 이제는 ebook까지 나와 있어 더 이상 종이 냄새 폴폴 맡으면서 한 장 한 장 책을 읽는 날도 얼마 안 남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시(詩)란 과연 무엇일까?
영화의 시작은 강물의 흐름으로 시작한다.
때는 한 여름. 장소는 한강변을 낀 작은 변두리 도시이다. 한 여학생이 물에 떠 내려온다. 단발에 교복 차림인 것으로 보아 어린 여학생임을 감지케 한다. 한 여학생의 자살, 그 자살을 하게끔 만든 10대 청소년들의 비행. 그리고 66세의 나이로 간병인의 직업을 가진 평범하고 그나마 중산층도 안 되는 주인공(윤정희)을 전면으로 내세워서 이창동 감독은 삶의 아이러니와 무기력을 말하려 했는지 모른다. 주인공인 양미자는 중학생인 손자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지만 좋은 시 한 편 써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별도, 나무도 꽃도 있다. 그녀는 시를 배우는 클라스에 들어가게 되고, 동시에 소녀의 죽음에 손자가 개입되어 있음을 안다. 이창동 감독은 어린 학생의 죽음 따위, 성추행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사람이 죽어나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세상, 슬픔이 가득 고여도 배는 고프고 시 낭송회 조차도 음담패설이 오가는 오락이 되어가고 있음을 소리치지 않고 담담히 이야기를 끌어간다. 동시에 ‘시(詩)’라는 한 문학 장르를 통해 생활과 삶 속에 깊이 배어있는 원초적인 슬픔 내지는 고독 또한 이야기 하려 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놀랍게도 배경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음악은 생략되고 대신 강물 흐르는 소리가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강물은 여전히 소리 내어 흘러가지만 그 누구의 가슴에도 강물은 흐르지 않고 있다. 소녀가 돌아본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날린다. 그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 움직임일까? 좋은 시 한 편 쓰고 사라진 주인공 윤정희의 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른다. 좀 더 자세히 끝까지 들어보면 흘러가는 강물 속에 아이들의 노는 소리도 섞여있다. 끝이면서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강물은 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을까?
이창동 감독은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안타까워 했지만 시(試)는 여전히 살아있다. 흐르는 강물 속에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리듯이 시는 살아 움직이며, 고독하고 무기력한 삶일 지라도 한 가닥 시원한 바람처럼 우리의 근원을 흔들며 지나감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글을 쓰며 하루의 삶을 시작하고 하루의 삶을 마감하는지도 모른다.
.......강물 소리 하나 가슴에 깊이 남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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