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두개의 성품이 있다. 하나는 이성이고 또 하나는 영성이다. 인간은 감성과 감각 그리고 사상을 축으로 하고 있는 이성에 의해 눈에 보여지는 물질적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넘어선 어떤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실재를 지향하는 영성을 지닌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영성(Spirituality)은 무엇일까?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령이라고도 하는데, 영성은 초월적 실재와의 만남을 통해 초월적 시각에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영적 본성 내지 성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바로 이러한 영성을 생명력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종교는 성행하면 할 수록 종교의 생명력인 영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왜일까?
종교의 집단성 때문이다.
종교는 집단성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고, 종교가 집단성을 가지기 위해서 조직과 제도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가 교회가 필요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보호, 유지하기 위해 교리를 확립하게 된다. 종교가 조직과 제도와 교리를 아주 든든하게 완성하고 최고점에 이를 때를 흔히 종교의 성공,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종교의 비극이 발생한다. 이 즈음에 종교는 조직과 제도, 그리고 교리를 위해 울타리를 만들고 배타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의 성공이 곧 종교의 실패다! 한국교회를 보라! 교회사적으로 세계적인 성공과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교회는 가장 실패한 교회이다. 거대한 무덤이라고나 할까?
왜일까? 그것은 교회가 조직화 되고 제도화 되고 거대하게 집단화 되면 될 수록 기독교를 떠받히고 있던 영성은 자취를 감추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는 조직과 체제와 교리를 위해 때로는 정치권력과 유착하기도 하고, 부를 축적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종교적 명분으로 전쟁까지 불사하는 그야말로 악령에 들린 집단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가 일으킨 십자군 전쟁이 이를 말해 주지 않는가? 그런데 몸소리치는 일이지만, 한국 기독교가 바로 지금 그렇지 않을까?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나간 악령이 다시 일곱 악령을 데리고 되돌아온 이야기가 있다. 되돌아온 악령들을 내어 쫓아야 한다.
맘모니즘의 악령, 성장제일주의의 악령, 기복주의의 악령, 거대한 바벨탑의 악령, 집단적 이기주의의 악령, 지독한 배타성의 악령, 그리고 꼴불견의 세습의 악령을 말이다!!
조명철
수도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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