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며칠 앞둔 요즘, 온 동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하다. 어둠을 밝히며 수줍게 반짝이는 은빛 금빛 조명들, 일제히 초록 빨강 유니폼을 두른 듯 집안팎을 꾸며놓은 갖가지 장식과 미슬토. 벽난로 주변에 걸린 커다란 양말과 라디오를 타고 울려 퍼지는 캐롤, 집안 가득 은은한 소나무 향기… 눈에서 귀로, 귀에서 코끝으로 전해지는 성탄의 느낌과 향기는 온통 ‘Christmas in the Air’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다. 수십 번을 반복한 일이지만 성탄의 소식은 여전히 작은 흥분과 설렘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렇듯 들뜬 분위기 속에서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신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이맘 때면 나의 눈가를 촉촉히 적시는 한 소년이 있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 아이.
나의 기억은 대학입시로 분주하던 1985년, 일곱 살짜리 한 소년에게로 향한다. 편모슬하의 어려운 살림이라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교회에 나오는 걸 좋아하던 천진난만한 꼬마. 어느날 그에게 가혹한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지금이야 완치율도 높지만 26년 전만 해도 백혈병은 어찌 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라던 성탄을 보지 못한 채 그는 하늘나라로 갔다. 숨을 거두기 전, 끔찍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 아이는 평안을 찾는 듯했다. 찬송과 기도소리를 들으며 아픔을 참아내던 아이가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 속에 남긴 마지막 말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아름답고 거룩한 유언이 되었다.
“저기, 예수님이 나를 보고 웃고 계세요. 엄마, 이제 잠을 좀 자야겠어요. 목사님,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사는 동안 고생만 시켰다며 가슴아파 흐느끼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평안히 잠들던 그 아이, 살아 있었다면 예수님과 같은 서른 세살 청년이다. 비록 일곱해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예수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갔다.
나를 울린 또 한 명의 청년이 있다. 얼마전, 모 선교단체 후원자로부터 애틋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매달 소액을 정성껏 보내오던 그 후원자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소천했다는 소식. 아들의 유품을 정리해 모은 500달러를 북한의 어린 생명들을 위해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27년의 생을 마감한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자 유언이었다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기 전에는 몰랐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의 애통한 마음을.
서른 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청년 예수.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이 다가온다. 온 인류를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구세주 예수. 대속의 죽음을 예고한 그의 탄생은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가슴 떨리도록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아리고 서글프다.
언젠가 그곳에 가는 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세 청년. 나를 울린 이 남자들을 그땐 활짝 웃으며 안아보고 싶다.
(프리랜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