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대학강사·수필가
요즘 대학들은 최첨단 기술의 빠르고 끝없는 발전으로 인해 그만큼 빠르고 끝없는 도전을 받는다. 경제침체로 이미 몇 년 전부터 교직원 감원, 봉급 동결·삭감을 겪고 있는데, 고가의 최첨단시설을 교육과정에 도입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안게 된 것이다. 똑똑하고 실용적인 요즘 학생들은 학교의 유명도보다 최신식 기숙사나 학생회관 외에도 최첨단 교육설비를 갖춘 학교를 선호하니, 첨단시설이 학교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
그렇게 해서 과목 당 수강 학생수가 늘어가고 있는 요즘, 교수들도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는다. 학생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교수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교수들과 대화하기를 원하니 반가운 일이긴 한데, 그 요구가 때로 너무 지나치다.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내내 강좌노트, 강좌비디오 등을 볼 수 있고 메시지도 쉽게 보낼 수 있게 된 학생들은 이제 교수들과 24시간 대화가 되길 요구한다. 이메일, 텍스트,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락을 남겼는데 몇 시간 내에 답이 오지 않으면 책임감 없는 교수로 여기는 추세이다.
학생들이 밤에 숙제하다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답장이 다음날 아침 일찍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과목 당 수십 명의 학생이 있고 아침부터 여러 수업을 해야 하는 교수들은 오후까지도 그 메시지를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잡한 질문의 경우엔 답이 더 늦어진다.
한 달쯤 전 LinkedIn에서 소개한 한 비디오에선 일류대생 몇 명이 자기대학 일부 교수는 강의도 성의 없게 하면서 학생들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요구하는 시간에 대화하지 않는다며 공개 불평을 했다. 심지어는 첨단기술을 몰라서 못하나 하는 비아냥조의 반응도 있었다. 자기입장만 생각하는 그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나를 하루 종일 화나게 했다.
내 경우, 프로그래밍 클래스에선 매주와 격주로 짧고 긴 프로그램 숙제를 내고 퀴즈도 본다. 퀴즈 점수야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으나, 프로그램은 우선 이메일로 받아 저장한 후 문제해결 과정에 따라 점수를 매겨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틀린 결과를 내는 프로그램의 경우, 답도 주고 정당한 점수도 주기 위해 100 줄 넘는 프로그램의 한 줄 한 줄을 체크한다. 완벽한 프로그램인데 점 하나가 빠져서 결과가 틀렸다면 좋은 점수를 주어야 하니까.
그외에도 하루 열 개 이상의 질문 이메일을 받는다. 복잡한 문제들을 이메일로 답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요구된다. 프로그램 마감 전날엔 이메일이 더 많아서 아예 답장을 포기한다. 양해를 구하지만 누군가는 불평을 하리라.
이번 학기에 우리 정보대학이 새 빌딩으로 옮기는 바람에 17년 간 한 사무실을 썼던 교수와 생이별(?)을 했다. 개학 후 매일 그를 잠깐 찾아가 봐야지 생각만 했지 아직 실천을 못했다. 그런데 마침 그의 수업과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있어서 그가 요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어제 수업 후 그 학생은 우리의 공식 메신저임을 자칭하며 신나게 그의 답장을 또 전했다. 마침 그 학생은 잦은 이메일로 내 시간을 제법 쓰는 학생이었다. 나는 또 답장을 전하면서, 이번 기회에 그 학생이 왜 자신이 메신저가 되었는가를 깨닫기를, 그래서 내 시간도 존중해주기를 은근히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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