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주일날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파송했던 날이였다. 그리고 서른살 나이에 조국을 떠나 30년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날들을 돌아보니 내 인생은 내가 산 것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내 인생 일생에 대한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이 땅에 보내셨고 지금 까지 그 뜻대로 이끌어오신것이다. 기쁜일도 많았고 슬픈일도 많았지만 그건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이였다.그 어느것 하나 나의 계획대로 되어진 일이아니었다. 그 뒤에는 숨어서 나를 도우시고 키우시고 다듬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10대 때 빡빡머리 코흘리개를 산골짜기 교회 새벽종을 치며 새벽기도하는 아이로 훈련하셨다. 20대 때는 서울로 유학 보내셔서 대학생선교회에서 캠퍼스 전도자로 ,30대 때는 남미에서 40대 부터는 북가주에서 지금 까지 미천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써 주셨다. 소백산에서 나무지개 지고 나무하다가 나뭇귀신이 되었을 이 인간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대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시고 그 일방적인 아버지 사랑을 성령으로 내 마음에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은 지난 60년 동안 수 많은 인간천사들을 나에게 보내주셔서 나를 만들어가셨다.
그분들 중에서 나의 첫 교회생활인 중학교 3년 동안 나를 기르신 분은 이희옥 남자 집사님이셨다. 그 분은 내가 사는 면소제지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셔서 교회가 없었던 우리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시고 3년간 매주일 설교하시고 교육하시고 심방하시고 교회건물을 지으셨다. 그리고 또 다른 면소재지에 부임해 가시면 또 교회없는 마을에 들어가셔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이집사님은 첫번 성탄절을 맞는 중학교1년 짜리에게 산상보훈인 마태복음 5장을 암송케하시고는 성탄절 선물울 주셨다. 이희옥집사님은 탁월한 평신도목회자이셨다. 그분의 본업은 교회이셨고 교장선생님일은 부업이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을 영주군에서 최우수 교장선생으로 여러번 상을 받게하셨다.
내가 처음 만난 신앙모델은 평신도 목자였다. 초등학교 선생님 목자였다. 하나님이 성령을 한 없이 퍼부어주셨던 1960년대 한국교회에는 위대한 평신도 목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며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 영향을 받은 나도 70년대 10년을 평신도 캠퍼스 목자로 20대를 불태워졌다. 그 영향력은 지금도 평신도 목자 양육을 목회 최우선 순위에 두게 만들었다. 지난 14년간 가정교회 목회줄을 놓지 못하고 몸부림 치게 만들었다. 새누리 선교교회 사명선언문은 한가지이다.. "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아 이 세상에 파송하는 목자양성소가 되는 것이다."
(새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