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
내과의사

환자 한 분이 한쪽 다리가 퉁퉁 부어서 병원에 왔다. 잘 살펴보니 다리는 부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벌겋게 열이 나고 있었고, 다리통증도 상당히 심할뿐더러 온 몸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염증은 발가락에서부터 임파선을 타고 빠르게 다리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병이 시작된 부분은 매우 작아서 찾기가 어려웠으나 면밀히 살펴보니 새끼발가락 살갗의 작은 균열에 박테리아균이 들어가 염증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환자는 가려운 염증 부분을 긁어서 증세가 악화되었고 급기야 임파선으로 퍼지게 된 것이었다. 항생제 주사를 정맥으로 며칠 동안 대량 투여한 후에야 병세는 겨우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발가락에 생긴 염증 때문에 온몸과 머리까지 아파하고 있는 그 환자를 보았을 때 “머리가 발에게 ‘너는 내게 쓸데없어!’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과 몸에서 더 약해 보이는 부분이 오히려 요긴하며…”라는 글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몇몇 지인들, 학생들과 함께 멕시코에 선교 봉사활동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샌디에고를 지나 미국 국경을 넘어 여러 시간을 차로 내려가야 했는데, 국경을 넘은 몇 시간 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로포장이 안 되어 있는 황량한 도착지의 흙먼지 바람은 온몸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갈색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흙먼지로 인해 목은 따가워 오고 입안에서는 모래가 버적거리고 있었다. 물은 소금기로 짭짤한 물이어서 샤워를 할 수도 없었고, 전기는 발전기로 몇 시간만 돌려 겨우 음식이 썩지 않을 정도로 냉장고를 살짝 돌리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인디안 원주민 수천명이 토마토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토마토케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금은 한 시간에 1달러 정도였는데, 그 원주민들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집단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닭장 같이 조그만 방에서 여러 식구들이 살고 있었고, 낯선 우리들이 도착하자마자 단칸방이 연결된 주택들에서 수백명의 어린 구경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학생들은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가르치며, 준비해 간 재료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나를 비롯한 의료진은 건강검진을 하고 몸이 불편한 어른들을 치료했다.

물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하루 이틀 지나니 뱃속이 불편하고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그 곳 원주민들의 건강이 좋을 리가 없는 이유도 물 때문이었다.

나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우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물이 좋지 않으니 건강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농사도 지을 수가 없고 잔디나 화초도 자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쓸 만한 물은 지하로 150미터 가량을 파야 나온다고 했다. 토마토 농장은 그렇게 하여 물을 조달하고 있었으나, 수만달러가 드는 깊은 우물의 혜택이 일반인들에게까지는 닿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발가락에 염증이 생겨 다리를 통해 퍼지면 온몸이 아프게 된다. 몸 전체에서 열이 나고 잘못되면 쇼크로 빠져 생명 자체가 위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몸의 이러한 유기적 상황을 보며 우리의 모든 이웃이 잘 되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지구촌의 형제자매가 아픈데 내가 평안할 수 없고, 내 형편이 넉넉하다고 해서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면 지구촌이 불안해져 나 역시 잘 살기가 어렵다. 몸의 여러 지체가 서로 돌아볼 때 온 몸이 건강하듯이, 아름다운 유기적 관계 형성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건강한 사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