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은 경기도 군포의 한 작은 마을인 요꼴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중학교 때까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지냈던 곳.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면 저는 꼭 별천지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였습니다. 봄에는 싱그러운 연한 풀잎색들이파릇파릇하게 온 마을을 덮고, 여름엔 짙은 녹색의 성숙한 느낌이 자연의 관능미를 자아내고, 가을에 노랗게 물들어 가는 논과길가마다 멍석 위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들. 눈이 내리고 있는 수채화를 보는 듯한 겨울 풍경. 가만히 있으면 눈이 내리는소리가 들리고, 가끔씩 그 정적을 깨는 산에서 내려오는 풍경 소리.
초등학교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내 읍내에 살았습니다. 저희 동네는 시내와 반대 방향에 있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대부분 홀로 걸어서 30분 정도로 와야했습니다. 때로는 홀로 집에 오는 것이 심심해 시내에 사는 친구들 집에까지 같이 걸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혼자 돌아오곤 하였지요. 하지만 사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길가에 홀로 피어있는 민들레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에게 우리집까지 너무 머니 내려와서 나를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말을 걸기도 하고, 논길을 따라 오다가 냉이나 쑥이 보이면 그것을 한 줌씩이라도 캐어서 어머니께 갖다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산은 언제나 저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마음이 왠지 모르게 답답한 사춘기 시절, 산과 자연은 제 마음을 달래주고,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그리고 가끔은 저에게 사색하면서 홀로 앉아서 글을 쓰게도 만듭니다.
’길’이라는 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산에 오릅니다. 산에는 많은 소리와 많은 색깔이 있습니다./ 서로를 볼 겨를 없이 아무렇게 난 가지와 잎으로 된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안의 가지와 가지 안의 잎과 잎은 곤충을 데리고 오고 곤충은 새를 데리고 오고 새는 나를 데리고 와 나는 이 사이를 지나가면서 산에는 산길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 산의 부드러운 흙을 밟습니다. 이 길의 모든 흙을 밟고 싶지만 흙은 내가 가질 수 있는 만큼의 부드러움과 땅 속의 촉촉함만을 느끼도록 합니다./ 산길은 내 예쁜 신발이 만지는 것보다 투박한 돌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무의 내일을 약속하는 잎이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돌과 나뭇잎의 마음되어 흙의 마음 한껏 먹고 산길을 다시 내려옵니다./ 마을이 보입니다. 산의 마음은 이제 동네길의 고추 말리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합니다."
열세 살의 감수성으로 바라본 세상.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고민과 그리고 사춘기가 막 시작될 때의 내 마음을 받아주었던 산에게 쓴 글들은 지금까지도 제게 마음의 위안과 행복을 줍니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꽃향기처럼 들려오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이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면서 누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회고하셨던 법정스님의 글 속에서 다시 한 번 저의 행복이 찾아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봅니다. 나는 바로내가 아니라, 나의 주위의 모든 인연과 자연 만물이 나를 키웠음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행복이 찾아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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