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세 한인 젊은이가 미연방 하원의원을 꿈꾸다
▶ 브래들리 상원의원 선거공약에 감명 정치계 입문
최준희와 정치계 스승 브래들리 상원의원
전 에디슨 시장 최준희가 2012년 뉴저지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평범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민주당의 차세대 유망주로써 착착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나가고 있는 그의 열정과 도전의 삶을 듣는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미 동부지역에는 아시안 연방하원의원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 40대 초반 한인 젊은이가 최초로 꿈을 꾸었다. 내년 6월 실시될 뉴저지 연방하원의원 예비선거를 위해 분초를 다투어 뛰고 있는 최준희 (Jun Choi·40)전 에디슨 시장, 그의 첫마디는 한인사회에 대한 감사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깊이 감사한다. 현재 선거 캠페인은 국내최고의 정치 고문들과 자문의원들로 구성되어 승리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워싱턴 민주당 본부와 뉴저지 민주당 의장의 적극적 권고로 나온 지역은 1980년이래 30년간 공화당이 승리한 뉴저지 7선거구이다. 헌터돈, 서머셋, 유니온 카운티 대부분과 최씨가 시장을 지낸 에디슨 일부 지역이 포함된 미들섹스 카운티 일부로 구성되었다. 백인유권자 79%, 아시안 0.9% 지역이다.
“경제의 활성화, 장기적인 국가 재정 안정, 교육개혁, 그리고 모든 인종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일에 힘쓸 것이다. 유권자들은 인종, 민족에 상관없이 가장 적임자를 선출할 것이라 믿는다. 특히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는 피부 색깔이 안보인다.”고 선거공약을 말하는 최준희, 그 역시 1.5세로 젊은 세대에게 관심이 많다. “젊은 한인들은 한인사회의 미래이다. 젊은 세대들이 공직이 하나의 직업이고 인종적 배경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게 그들의 롤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최준희가 연방하원의원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도 될까?
“하원의원이 하는 일은 많다. 남북이 분단된 한국관련 이슈도 다룰 수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 둘째 6자회담의 진지한 대화 촉구와 교육, 문화, 인도주의 교류 셋째 남북이산가족상봉 등이다. 미국은 외교정책면에서 이 세가지 사항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그가 2005년 에디슨 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오바마 당시 연방상원의원은 뉴저지를 방문, ‘우리 같은 소수계들이 미국을 희망의 나라로 바꿀 것’이라고 지원유세 해준 일은 유명하다.
“오바마를 대단히 존경한다. 그는 민권운동 이래 미국의 변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정책면으로 경제계획이나 헬스케어 비용 등을 좀더 잘 해결해야 했고 한인 FTA 협정을 좀더 빨리 지지했어야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기 전에는 그를 만나지 않지만 민주당 리더들과 시니어 스텝들은 계속 접촉한다. 지난달 전 선거 사무장이며 현 대통령 수석고문인 데이빗 플라우프와 만나 캠페인 전략에 대해 의논했다.”
▲가정에서 배운 서비스 정신
최준희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3세때인 1974년 부모님 손을 잡고 미국에 이민왔다. 뉴저지 엘리자벳에서 살다가 에디슨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20년이상 세탁소를 운영하며 1남 1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고 자식들에게 공공 서비스 정신을 일깨워주었다.“저희 부모는 열심히 일한다는 것, 소기업 오너로서의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남매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손위누나는 스탠포드 대학과 스탠포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왔고 최준희도 에디슨 스티븐슨 고교 졸업후 MI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했지만 80년대와 90년대초에 미군이 요구하는 시력기준(20/20)보다 조금 못미쳤다. 나는 하나님이 준 힘, 약점, 나의 열정 등을 살펴본 결과 내 천성 속에 공공 서비스 정신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공공정책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인과 타인종 이민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컬럼비아에 다니던 1998년 12월에 빌 브래들리 민주당 상원의원의 대선 출마 운동에 자원봉사했다. 빌 브래들리는 나의 정치 스승이다. 인종간의 조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 등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빌 브래들리의 선거공약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수준 높은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기회를 준다.”
최준희는 2002년~2005년 뉴저지주 교육국장으로 일하면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현재도 뉴저지 공립학교 140만명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정보가 되고 있다.미국에서 잔뼈가 굵은 최준희지만 그는 한국계임을 잊은 적이 없다. “시장직에서 물러난 후 마치 10대처럼 한국을 몇 번이고 방문하여 25년 사이 세계 메인 무대에 오른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느꼈다. 한국의 근사한 스토리가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고향인 강릉은 자연미가 살아있는 멋진 도시였고, 현재 강릉시장이 친척일 정도로 그곳에 우리가족의 뿌리가 깊다.” 그가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2009년 6월 시장 재선을 위한 뉴저지주 예비선거에서 패한 것이다.
“굉장히 슬펐다.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작은 것에, 모든 것에 승리하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다. 링컨대통령도 여러 선거에서 졌으나 큰 선거에서 이겼다. 나는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큰 문이 열린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최준희, 그가 말하는 큰 정치인은 어떤 사람일까.“성공한 정치가가 꼭 인기있는 정치가는 아니다. 성공한 정치가는 사회를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가는 링컨 대통령이다. 선거에서 참패를 하기도 했지만 미국을 남북전쟁에서 구하고 발전시켰다”
▲인생의 빛을 발견하다
2009년 6월 그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한인 2세 리사(Lisa) 이씨는 스탠포드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 출신으로 메릴린치 투자은행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새로운 회사에서 일한다. “나의 아내 리사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나를 감정적으로, 펀드레이징 어시스턴트로 가장 잘 도와주는 배우자다. 에디슨 메모리얼 타워 앞에서 프로포즈했다. 그곳은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장소이다. 리사는 내 인생의 빛이다.”
34세 미혼남이 2006년 시장으로 취임하며 날카로운 칼날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던 전사(戰士)가 배우자를 만나면서 로맨티스트가 되었다. 평소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리사가 런던에서 일할 때 만나러 갔던 추억으로 시간이 나
면 다시 런던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는 요즘 코리언 프로그램에서 한글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치력 신장이 우선인 점을 잘 안다. 미국 435명 하원의원 중 월남, 인도, 중국(2명), 일본(5명) 등 다른 아시아계 의원들이 각 민족의 권익을 대변해 주고 있으나 한국계는 없다.
최준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한인사회의 관심과 도움이다. “모금위원회(의장 김영덕 박사)가 여러 행사를 계획 중인데 한인사회에서는 27일 뉴저지, 28일 롱아일랜드에서 모임이 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와 주면 감사하겠다” 민주당은 금년말까지 100만달러 모금을 권하고 있다. 첫번째 선거모금캠페인은 오는 30일까지로 단돈 5달러~2,500달러까지 자유롭게 기부(웹사이트 www.junchoi.com)할 수 있다. 한인 최초 동부지역 연방하원의원으로 가는 길에 우리가 돌다리 하나씩 놓아주는 것은 어떨까, 그의 꿈이자 한인사회의 꿈을 이뤄보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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