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게 표현해서는 청빈한 삶을 지내고 있고, 달리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구차하다.
구차한 중으로 풍요를 누리는데 그것은, 풍부한 시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는 것을 대변하듯이, 점점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그때 그 시절을 찍어놓은 사진과 예전 내 모습의 형체가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던 시절의 물건을 애지중지하며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는 어느 방송을 듣다가 녹음한 테이프도 있다. 가요, 팝송이 흘러나오는 중에 누군가 “Don’t worry, be happy”하며 노래한다. 이 노래를 부르던 때를 손꼽자니 어언 25년 이상이 된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한창 젊음을 구가하던 시절에는 걱정이 많았는가 보다. 아니, 많았을 것이다.
활기 있던 시절에는 주위를 돌아보며 형편이 안 좋은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또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정의감 따위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도 별 수 없이 세월의 강에 휩쓸려 흘러졌다.
세월의 강줄기를 따라 흐르다가 어딘가에 모인 삼각주에 멈춰서서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걱정이란, 아닌 말로 쓰잘데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으니 걱정이란 것은, 당연히 내게서 없어졌을까?
복잡한 삶을 살면서 남들은 알지 못할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다.
물론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내가 생각하는 걱정이 아닌, 또 다른 걱정을 말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사람들 모두의 생각은 각기 다르니까.
사람은 생각을 하면서 순간순간을 지내니까 그것은 곧 걱정을 하는 거로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지낸다함은 최상의 삶을 누리는 것임에는 분명한 일이다.
최강의 힘을 누리고 아쉬울 것 없이 지내던 진시황도 죽음이란 걱정을 안고는 생명을 지켜줄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으로는 죽음을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이 노래가 말하는 의미는 맞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 생각이 슬픈 걱정이던 즐겁고 기쁜 것이던 간에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특기라고 생각해도 될 것에 찬물을 끼얹었던 노래는 아련하게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에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이 사람의 생각하는 즐거움을 빼앗고 있다.
모두는 어림짐작으로 알 듯해서 애써 나서서 밝히지는 않겠다. 나 자신도 가끔은 이것의 도움을 받으니까 말이다.
마음이 찢어질 듯한 걱정이라 할지라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걱정하며 살자.
왜? 우리는 오감을 지닌, 하나님의 창조물 중 최고의 걸작이니까.
김부순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