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생신은 기억 못해도 그의 생일은 어김없이 기억했다. 아니, 기억해야만 했다. 생일뿐이겠는가? 그 시절 우리들은 엄격한 규율과 억압 속에 길들여져 있었지만, 그 젊은 가수의 록큰롤을 열렬히 사랑하고 흠모하며 청춘을 불태웠었다.
그의 생일은 10월 14일이었고 그가 29세를 갓 넘기던 1969년 10월로 기억되는 어느 날, 저녁에 시민회관에서 ‘클리프 리쳐드’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 당일은 저녁때까지 학생들을 하교시키지 않겠다는 학교 측의 선언이 있었으나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친구 은주는 피넛버터반통과 물을 먹고 일부러 배탈을 내 조퇴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나와 또 다른 친구 경애도 아픈 은주를 집에 데려다준다는 명목으로 학교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콘서트 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무대 가까이 나란히 앉아 그가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조명이 바뀌며 드디어 무대에 까만 더블버튼 양복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그가 열광과 환호 속에 나왔는데, 인사말도 하기 전에 몇 학생은 이미 기절하여 앰뷸런스에 실려 나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레퍼토리는 다양했으며 ‘The young ones, Summer holidays’를 부를 때마다 모두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Congratulations’를 부를 때는 간간히 손수건 세례가 있었는데 그걸 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불호령을 감수해야 했고, 다음날 시험에서 하얀 답안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교무실에 불려가 박수쳐서 부어오른 손바닥에 매를 맞았다. 게다가 죄 없는 나의 어머니까지 담임선생님의 호출로 학교에 다녀오신 후 이마에 흰 수건을 쓰시고 그만 몸져 누워버리셨다.
이렇게 나는 그해 그일로 인해 커다란 홍역을 치뤄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으니 내게는 그가 준 손수건이 있어서였다. 손수건 하나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고, 친구들은 틈만 나면 보여 달라고 모여들곤 했다.
세월은 잘도 흘러서 어느 덧 내가 그 시절 나의 어머니 나이를 넘은지 오래다. 흰머리를 감추려고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며, 간혹 손에 열쇠를 쥐고도 찾으러 다니지 않나, 한 얘기 또 하고 되풀이한다고 애들에게 지적당하기 예사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겁 없고 어처구니없이 행동했던… 그러나 순수했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립다. 이래서 헤르만헷세는 말했나보다. "청춘은 아름다워라" 라고.
(아여모 북가주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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