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신발이 생겼다. 유럽여행을 갔다 온 조카가 이태리에서 세일해서 싸게 사긴했는데 너무 커서 못 신겠다며 나에게 건네준 신발이다.
가죽부터 스타일까지 너무 맘에 들었다. 보통 뒀다 신어보라며 마다 할텐데 이번엔 넙죽 받아왔다. 그런데 집에와 신어보니 사이즈가 약간 작은 것이다. 커서 벗겨지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열심히 신으면 늘어나겠지 하는 생각에 그 다음 주에 바로 신고 일을 갔다.
오전까진 괜찮았다. 맘에 드는 신발을 신어서 그런지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앉아 있어서 잘 몰랐던 것이다. 일이 바빠지는 오후가 되니 계속 움직이게 되고, 계속 움직이며 걷다보니 작은 신발때문에 발이 신경쓰이게 아파왔다. 계속 발을 죄어오는데 퇴근할 때 즈음엔 발이 부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명품이라 그런지 언뜻 거울에 비친 신을 보면 맵시가 괜찮게 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드는 만족감이란…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집에 가면 신을 벗고 하루종일 고생한 발을 쉬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딸 치과 예약 확인 전화가 온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재빨리 일을 정리하고 딸을 학교에서 데리고는 시간에 맞춰 가느라 거의 날아갔다. 천천히 살살 걸을 수 밖에 없게될 만큼 발 상태는 말이 아니었는데, 치과 예약시간에 맞춰야 하는 조바심 때문에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 그 15분 거리가 나에게는 고문의 시간이었다. 더이상 구찌에 대한 만족감은 없다. 신발의 스타일을 탓하고 있었다. 갑자기 평상시에 막 신던 편한 신발들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치과에 막 도착해 의자에 급히 앉았을 때는 신을 벗을 수도 신고 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이런 정도의 작은 신발을 신어봤어도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다. 별명이 고무줄 발이라 할 정도로 여러 사이즈를 소화해 낸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다. 명품이라도 별 거 없구나 하는 실망감이 들기 시작했다.
눈물을 머금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발이 해방되는 순간이왔다. 집 문을 들어서자마자 주저앉아 신을 벗고는 그대로 한참을 발을 감싸고 있었다. 정말 고통에서 해방된 안도의 쉼이었다. 그리고는 그 구찌신발은 다시 담겨졌던 가방에 넣었다. 미련없이 바로 넣고는 그라지 신발 창고에 넣어버렸다. 아직도 흔적이남아있다. 구찌가 남겨준 물집.. 훈장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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