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의학이라는 범주에서 한국 최초의 의사는 인종적 관점에서 보면 서재필이다. 그는 1892년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1889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였고, 귀국 후에도 의사로서의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최초의 의사는 누구였을까? 놀라웁게도 김점동이라는 여성이었다. 세례명이 에스더였던 김점동은 박유산과 결혼하면서 박에스더라고 불리웠다.
김점동은 통역으로 의료 선교사였던 로제타 셔우드를 만났었고, 이후 그의 의료 활동을 돕게 되었으나 그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특히 수술실의 보조일을 싫어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의사가 언청이 수술을 하는 것을 본 후 그는 마음을 바꾸어 반드시 의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닥터 셔우드는 자신보다 어렸던 김점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랑하는 에스더,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배우게 한다.” 1894년 조선에서 함께 의료 선교를 하던 남편 윌리엄 홀이 사망하자 닥터 셔우드는 사랑하는 에스더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에스더는 1900년 존스 홉킨스 대학의 전신인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최초의 의사가 되게 된다.
박에스더는 졸업 후 바로 귀국해서 닥터 셔우드와 함께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동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로 인해 그 자신이 결핵에 걸리게 되고, 1910년 사망했으니 그의 나이 겨우 35세였다.
당시 의사라는 탁월한 지위를 가지게 된 여성이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했던 가난한 조국으로 돌아와 목숨을 다해 헌신했던 삶이 우리 나라 최초 의사의 일생이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 이와 같은 분들이 계셨으며 그 뒤를 따를 만한 모범과 도전을 주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진 귀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역사를 배우는 일은 우리의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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