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현인은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하였다.
세월이 갈수록 모든 일에는 시간과 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중에서도 환자를 치료할 때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심장마비로 오는 경우 급하게 약을 투여하거나 전기충격으로 부정맥을 치료하고, 막혔거나 좁아진 관상동맥을 정밀검사 후 뚫어야 한다. 위장출혈이 있는 환자는 즉시 수혈을 시작하고 위장내과 의사의 도움으로 출혈되는 부분을 찾아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급성맹장염은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되며, 급성 신장염, 혹은 담낭염 등 각종 염증으로 패혈증이 임박한 환자에게는 한시 바삐 항생제를 투여해야 경과가 좋다. 쇼크에 빠진 사람에게 수액은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해야 되는 경우가 급성질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만성질환이라도 인슐린 치료나 투석을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니 시기가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증상이 심상치 않아 사전약속 없이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 중 진찰 후 급작스럽게 입원을 권고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의사의 반복되는 설명과 강경한 태도에 어정쩡하게 동의를 하게 된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병원 입원실로 직행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는 환자들이 있다. 무슨 아쉬움이 남는지, “가긴 가는데, 집에 가서 하던 일 정리해 놓고, 옷이며 준비물 챙겨가지고 입원실로 가겠습니다” 한다. "설마?"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무엇이 더 중요한 지 그 순간 파악이 안 되는 것인지 의사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인생 여정에서 때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최근에 만났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 의료봉사를 갔을 때 통역할 사람이 부족하여 우리는 쩔쩔매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솟는 진땀이 열대기후로 인한 땀과 범벅이 되고 있을 때, 한국 국제협력단(KOICA) 소속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오신 분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KOICA는 1991년 세워진, 대한민국 외교통산부 산하기관으로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기관이다. 근래에 와서 활동이 왕성해져 세계 39개 국에 1,573명이 파견되어 있다. 단원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봉사하고 기술을 전수하며, 학교 설립 등 현장사업도 추진해 주고 있다.
원조기금도 꾸준히 증가하여 2009년 기준으로 2억7,900만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에게 도움을 준 단원은 나와 동년배인 배현돈씨로 고급 컴퓨터 기술자였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기업에서 30년간 근무하다가 조기은퇴를 하고 인생을 돌아보니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보람이 전부였다. 은퇴 후에는 더 넓게 이웃과 사회를 위해 직접 헌신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생기더란다.
그는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고 실행으로 옮겨 KOICA의 일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봉사를 시작했고, 언어훈련을 거쳐, 지금은 인도네시아 정부 관리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그는 기술뿐 아니라 불평등, 가난, 절망에 찌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역경을 이겼던 경험담을 전하며 희망과 도전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참 기쁨은 남을 섬길 때 온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순간, 정성을 다해 기쁨으로 우리 의료팀을 돕고, 마을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 대원 모두 큰 감명을 받았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KOICA란 단체를 통해 세계 도처에서 봉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감격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불과 몇십년만에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그런 때임을 깨닫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
섬길 때를 아는 KOICA 단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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