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살아있다고 하는 피조물의 세계는 생성소멸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며 자연의 법칙이어서 영원한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목사로서 종말을 성경에 근거해 3가지 관점으로 볼 때 유대인의 경전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창세기 7장과 9장에 우주적인 홍수 종말의 사건이 있었던 기록을 볼 수 있다. 이후로부터는 홍수의 심판이 없는 언약으로 오늘 날까지 무지개의 징표를 인간에게 주셨다. 무지개는 비온 뒤에 볼 수 있는데 참 아름답고 신묘불측(神妙不測)하다.
두 번째의 종말은 불로서 예언했다. 벧후 3장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이 불에 타며 큰 소리로 떠나가고 풀어지며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2000년 전에 핵폭탄 전쟁으로 핵분열의 연쇄 폭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의 종말은 도적같이 온다고 했다. 이러한 종말은 초현대 문명권에 살고 있는 강대국의 핵 보유로 인한 것으로 제 아무리 안전장치 시스템을 해도 인간의 실수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라 부주의로 핵폭탄이라도 발사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패거리 3차 전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날의 징조는 자연과 인간사의 허용적인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며 개개인의 종말은 순서가 없다.
두 번째 종말은 그 날과 시간을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경고가 마태 25장에 기록돼 있다. 종말은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간사에 있어 넉넉한 자는 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병들었을 때 간호하며 지상낙원을 권고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세 번째 종말은 모태로부터 출생 호흡하는 순간 종말도 호흡을 하면서 그림자처럼 한 사람의 종말이 오는 그 순간까지 따라 다니고 동행한다. 다시 말해서 종말을 위해서 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종말은 필연적이며 서러운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고 기독교적으로 볼 때 종말은 영원히 소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며 출발점이라 하겠다. 그곳은 애통이나 곡하는 것 아픔이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최후의 종말을 맞는 자 같이 살면서 한 오백년 꿈을 갖고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난 오늘 사과나무 한그루 심겠다는 소신 말이다.
요즈음 경제가 너무 심각하고 어려운 것 같다 우리 다시 허리띠 졸라매고 인내로 고비를 넘으면 희망은 있을 것이다.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의 밑거름이 되어 이 땅에서 주인이 되도록 굳게 강하게 살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해 보자. 우리 동포 1세들이여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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