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스카스데일 거주)
나이 60을 넘어선 지금도, 지난날 한이 맺혀 항상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던, 어머니와의 나와의 애증의 관계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딸만 내리 4명을 두신 아버지 연세 40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네번째
딸로 태어난 나의 험난하고 험난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둘째 딸이 백일 전에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에 사실상 세째 딸이던 나는 2살 나이에 동생에게 엄마를 뺏기고 항상 엄마 품을 그리워했다. 밤에 잘 때에는 엄마의 오른쪽엔 아버지, 왼쪽엔 남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5살도 안된 내가 기발한 생각을 해냈었다.
“엄마, 내 자리를 엄마 발 아래쪽에 깔아주세요. 엄마 발 좀 붙잡고 자게요.” 그러나 엄마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항상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렇게 엄마 곁에 있고 싶어하는 나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두 번 나의 어린 가슴을 멍들게 하셨다.6.25사변 때다. 부평 전기 출장소 소장으로 계시던 아버지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먼저 피하셨고, 며칠 후 엄마는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데리고 출장소에서 일하시던 아저씨와 함께 시골 산동네로 피난을 갔다. 어머니는 12살 큰언니, 8살 작은 언니를 양손에 붙잡고, 5살 나와 3살인 내 남동생은 사과궤짝에 넣어 자전거 뒤에 싣고는, 다들 피난가고 한없이 조용한 빈 동네를 걸어갔다. 인가가 있는 신작로 옆으로 천천히 한여름 소풍 가듯 걸어 갈 때 난데없이 비행기가 우리들을 향해 저공비행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놀라신 어머니는 눈깜짝 할 사이에 두 딸의 손을 잡고 길 옆 빈집 처마 밑으로 피하셨고, 자전거를 몰던 아저씨도 신작로 옆 오목하게 파들어 간 곳에 납작 엎드렸다.
과녁을 맞추지 못한 비행기는, 자전거에 실려 있는 우리를 향해 저 멀리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때 비호같이 뛰어온 나의 어머니는 내 남자동생만 냉큼 안고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괘짝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벌리고 엄마를 불렀다. 그 순간, 균형을 잃은 자전거가 쓰러졌고, 비행기는 기총소사를 하며 다시 지나갔다. 우리 식구는 자전거도 버리고 그저 걸으며 언덕을 기어서 피난지인 시골에 도착했다. 내가 엄마한테 “나 궁뎅이가 아파요. 아파요.” 해도 그냥 손으로 쓸어주시면서 “괜찮다” 하시기만 했다. 나중에 보니, 아픈 곳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있었다. 두번째 일은 6개월후 1.4후퇴 때다. 트럭에 실은 피난짐이 꽤 많았다. 천안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으나 남하하는 피난민이 너무 많아 트럭의 짐을 내려놓고 사람만 싣게 되었다. 짐을 여관에 푼 아버지는 엄마와 애들만 먼저 가라고 하시고 나중에 대구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어느새 아들은 업고, 큰 언니, 작은 언니는 양손에 잡고 트럭에 타고 계신 게 아닌가. 나는 엄마를 부르며 나도 엄마랑 같이 가겠다고 울부짖었다. 그 때 엄마는 깨엿 3개를 내 손에 쥐어주시며 아버지 따라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깨엿 3개에 또 엄마를 잃게 되었다.그렇게 애증의 세월이 흘러, 내가 아들 둘을 2년 터울로 낳아 아이들이 다 커서 고등학교를 다
닐 때, 나의 6.25때 이야기를 흘러간 이야기로 무심코 들려주었을 때, 아들들의 얼굴에 나타난 놀람이라니.....며칠 후 우리집에 다니러 오신 외할머니한테 큰아들이 왜 엄마를 상자곽에 그냥 두고 상처를 입게 했느냐면서, 내가 이담에 영화감독이 되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단호히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엄마는 정말인줄 아셨는지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니다 정말 아니다 영화로 만들지 말아라 하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딸이라고 편애하셨다고 철없이 대들면서 무던히도 속썩여 드렸던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이 흐른다.아들을 유난히 좋아 하셨던 우리 엄마는 결국 그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미국에서 17년동안 너싱홈 한번 안 가시고 여생을 보내신 후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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