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안창호, 필라-서재필이 있다면 뉴욕엔 조병옥
▶ 독립운동 사적지인 뉴욕한인교회 창립 일등공신
독립기념관 발행 ‘근대 한국인의 삶과 독립운동’에 실린 1920년대초 뉴욕한인 유학생들 사진. 앞줄 지팡이를 든 사람이 조병옥.
지난 24일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사적지인 뉴욕한인교회가 창립 9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가졌다. 미 연합감리교단 동부지역 박정찬 감독이 설교를 했고 박인국 주유엔대사가 축하 메시지를 전한 가운데 이 교회가 자랑하는 성가대의 축하음악회와 리셉션이 성대하게 열렸다. 주영빈 장로등 50년 이상 출석교인 9명에 대한 표창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교회창립 공로자인 킴벌랜드 여사와 조병옥(사진)에 대한 특별한 치하가 있었다.
이 두사람의 공로는 1921년 4월 미국 감리교 뉴욕지구 선교회의 재정후원으로 교회가 창립될 때 서재필박사가 구성한 친한회(The League of Friensds of Korea) 뉴욕지회장 앤지 그래햄 킴벌랜드 여사와 당시 컬럼비아대 재학중으로 북미유학생총회 부회장이던 조병옥이 학생조직을 이끌고 들어오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조직뿐 아니라 교단과의 구체적인 교섭과정에도 이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옥은 1894년 충남 천안 출생으로 1914년 배재전문학교(연희전문 전신) 졸업과 동시에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펜실베니아주 소읍 킹스턴에 떨어지게 되었다. 당시 나이 20세였지만 그곳 와이오밍고교에 입학해 4년간 영어 기초과정을 익히면서 힘든 고학생활을 했다. 석탄 때는 화부, 광부, 식당 웨이터, 남의 집 쿡, 인삼장사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1918년 컬럼비아대에 진학해서는 경제학과 싱코비치 교수의 명강의에 심취했다. 이때 경제학 원론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적 비판등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탐독하는 등 유물사관의 정체를 판단했던 시기였다. 당시 프레그머티즘을 대성시킨 잔 듀이 교수의 강의도 일품이었다.
이듬해 본국에서 터진 3.1운동의 여파로 그해 4월중순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대회에 학생신분으로 참여했다. 평소 존경하던 서재필과 이승만도 거기서 만났다. 대회가 끝나면서 서재필이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친한회(The League of Friensds of Korea) 구성에 적극 협력했다. 미국내에 한국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한국과 인연이 닿는 사람들이나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작업에 몰두했다. 서재필은 미국내 여러 곳에 친한회 지부를 설치하는 폭넓은 활동을 벌였으며 그를 도와 조병옥은 뉴욕지부 결성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때 접촉한 사람이 바로 킴벌랜드 여사였다. 킴벌랜드는 육군 준장의 부인으로 의친왕이 미국에 유학 왔을 때 그와 사귀면서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뉴욕한인교회의 창립은 그와같이 친한회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되었고 이 두사람이 한인교회 창립의 1등공신이 되어있는 것이다.
한편 조병옥을 뒤따라 유학 온 약혼녀 노정면양이 1920년 뉴저지 드루학원을 졸업하자 둘은 생활비를 절약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서둘렀다. 이듬해 뉴저지의 놀이공원으로 유명했던 팰리세이즈 파크(지금의 대원 부근, 1972년 폐쇄)에서 여름한철 커피샵 운영으로 돈을 벌어 그해 9월 맨하탄 34가 6애비뉴 코너에 있는 매칼핀 호텔에서 매크로시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생활 1년만에 장남 준형을 낳았고 곧이어 연년생으로 임신을 하게되자 겁이 덜컥 난 부부는 상의 끝에 부인이 먼저 귀국길에 오르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조병옥은 곧이어 도산이 이끄는 흥사단에 입단했고, 1925년 박사학위 논문과정을 마친 직후 뉴욕에서 만난 연희전문 교장 어비슨 박사로 부터 교수 초빙에 응해 귀국길에 올랐다. 해방되기까지 연희전문 강사, 조선일보사 전무를 지냈고, 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2년간 복역도 했다. 해방 직후 장덕수, 송진우와 함께 한국민주당을 창당했고 미 군정시절 경무부장을 역임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대통령 특사로 임명된 조병옥은 각국 방문길에 뉴욕에 들러 장기체류하면서 갖가지 일화들을 양산해냈다. 유엔 부근 이스트 42가 튜도호텔에 묵으면서 학창시절 힘든 고학생활이 생각났음인지 웨이터나 도어맨들에게 두둑한 팁을 집어주어 주위를 놀라게 하거나 여인들과 스캔들을 만들었고, 술값이 모자라 이원순 등 교포들의 신세를 졌다는 후일담이 많았으나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필자는 최근 입수한 한국 독립기념관 발행 ‘근대 한국인의 삶과 독립운동’이라는 사진책자에 실린 1920년대초 ‘뉴욕의 한인학생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윌리암 천 기증)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아마도 무슨 기념식에 참석한 뒤였는지 모두들 넥타이 정장차림의 환한 분위기인데 앞줄 가운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조병옥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말 자유당 독재가 한창이던 시절 야당 민주당의 대표 최고위원으로,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 독재에 앞장섰던 조병옥, 강직한 성격, 사자처럼 위엄있게 생긴 모습으로 한세상을 풍미했던 호걸 정치인, 그에게도 저런 학창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시절에는 독립운동, 말년에는 조국의 민주화에 일생을 바친 애국자. 이승만의 라이벌로 그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60년 2월15일 워싱턴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위암치료 중 동맥경화로 사망한 그는 대통령 선거 직전 국민들의 열렬한 기대 속에 갔기 때문에 당시의 인기와 아쉬움이 남아 영원한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1백년이 조금 넘는 재미한인 역사 속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이고도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주저없이 나오는 이름들이 있다. 서부쪽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단연 도산 안창호가 거론된다. 국민회와 흥사단을 통해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쳤던 족적이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와이라고 하면 그곳에서 기독학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지휘했던 이승만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4.19 학생혁명이 나고 하야한 뒤 망명길에 올랐던 이박사가 말년을 보낸 곳도 하와이였기 때문이다. 워싱턴도 마찬가지이다. 3.1운동 직후 구미위원부를 워싱턴에 설치하고 정치와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과감하게 펼쳤던 곳이 바로 워싱턴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하와이와 워싱턴을 둘다 상징하는 인물로 굳혀졌다.
다음으론 필라델피아의 서재필이다. 의사 공부와 결혼은 워싱턴에서 했지만 3.1운동을 전후해서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서재필은 그곳서 문구류 비즈니스를 동창생과 함께 했고, 독립운동을 열정적으로 벌였고, 그로인해 파산까지 당한 개인사를 겪기도 했다. 해방 후 미군정의 고문으로 발탁돼 귀국했다가 이승만측의 비토에 부딪혀 결국은 메디아로 돌아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누가 무어라 해도 서재필은 필라델피아 사람이다.
그러면 뉴욕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풍기는 이미지 면에서 도산이나, 서재필, 이승만 보다는 다소 약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뉴욕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유석 조병옥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그가 뉴욕한인사회에 남겨놓은 유산이 틀림없이 있지만 그의 공적을 기리거나 치하하는 후손들의 노력이 부족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연관된 뉴욕의 기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후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또한 생각한다. 늦었지만 그를 재조명하고 그를 기리는 행사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종무<국사편찬위원회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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