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그리고 독일 등 전설적인 작가들의 고향이자 작가를 꿈꾸는 자들의 로망인 그곳에서, 한국작가 신경숙의 이름이 불리우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인, 특별히 한국작가를 통해 기록된 한국이 세계 독자와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당연히 시대를 고민한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특정한 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를 먹고 마시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체화된 시대는 작가가 소유한 재능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된다. 개인적인 생각과 기억의 결과물로써 작품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작가 신경숙의 소설을 통해, 동시대의 한국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에 의해 기억된 시대는, 당사자뿐 아니라 이후 그것을 맞닥뜨리는 누군가에 의해 추억된다. 이것이 바로 글의 매력이다. 시대는 일방적인 조류를 타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회자라는 이름으로 돌고 돌며 반복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에 대한 그간의 기록을 초월하는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우주적인 이야기들을 담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이것을 소통이라 부른다.
작품에 입혀진 시대의 옷을 벗기면, 결국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보통 인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종이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도 돌담에 써놓은 기호들을 읽으면서 숨은 뜻을 발견하려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 이태준은 ‘괴벽한 언어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단어와 문체만으로 ‘허무함’ 같이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을 집요하고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작가이다. 그의 단편소설 <까마귀>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가 등장한다.
‘미닫이와 들창도 다 갑창까지 드린 데다 벽장문과 두껍다지에는 유명한 화가인지 아닌지 몰라도 낙관이 있는 사군자며 기명 절지가 붙어 있다. 밖으로 문 위에는 추성각이라는 추사체의 현판이 걸려 있고 양쪽 처마 끝에는 파랗게 녹슬은 풍경이 창연히 달려있다.’
빼어난 한국문학이 그동안 왜 쉽게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한다. 세심히 언어를 고르고 고른 흔적이 역력한 이런 정성스런 글은 한국독자들에게는 커다란 기쁨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작품의 원뜻을 온전히 살려, 타 언어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들에게는 큰 망설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세계가 ‘포스트 신경숙’을 찾고 있다고 한다. 작가 신경숙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미처 무르익기 전이라 조금 이르다 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궁금해졌다는 기분 좋은 신호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한글이 갖는 다양성과 우수성은 되려 한국문학의 지경을 좁히는 요소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무론하고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글’이라면, 더 적극적인 소통의 길을 모색하고 닦아가는 것은 마땅히 우리의 할 일이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한국의 우수문학작품들을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한국을 궁금해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더욱 자신 있고 과감하게 언어의 벽을 넘나들 수 있게 됐다.
한국문학은 한 점을 찍어도 은은한 떨림과 퍼짐을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세계라는 화선지에 드디어 묵향 그득한 첫 점이 찍혔다. 앞으로 이 점이 어떠한 모양의 퍼짐을 만들어갈지 함께 지켜보자.
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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