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이 뭔지 모르는 필자 같은 백면서생이 감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다. 며칠 전 대학 총장을 지낸 분이 기껏해야 차관급인 청와대 참모로 갔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언젠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초청 강연에서 자신의 제자를 가리키며 "요렇게 생긴 토종이 애 잘 낳고 살림 잘하는 스타일"이라는 등 교육자로서 입에 담지 못할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바로 그 양반이다.
또 한 분은 4 27 재보선 지역인 경기 분당을 출마가 거론된 정운찬 전 총리로 역시 대학 총장 출신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까지 한 분이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 들어 이리저리 걷어차이고 깨지는 참담한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다.
정 전 총리를 생각하면 김상협 전 총리가 떠오른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 전 총리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자제로 일찍부터 "대통령 감"이란 말을 들을 만큼 남달리 중후한 인품을 타고난 출중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는 "우리 사회에 막힌 곳은 뚫고 굽은 것은 펴겠다"며 제법 의욕적으로 총리직을 맡았지만 재임 중 뚫고 펴기는커녕 정통성 없는 정권의 얼굴 마담 노릇만 하다가 어느 날 소리 없이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
정 전 총리 또한 무슨 연유로 갑자기 이념적 스펙트럼이 전혀 다른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잡게 됐는지 지금도 의아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두 분 다 그래도 한 때는 야권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영입하려 했던 분들인데 결국 권력에 이용만 당하고 참신한 이미지만 더럽혔다.. 감투가 아까운 인물을 망친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가 하면 일제 때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광복군 출신으로 권력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치고 "나 한 사람 만이라도 끝까지 학자로 남고 싶다"며 총리직 제의를 끝내 고사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같이 독야청청한 분이 있어 원로 부재의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나마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많아도 지성인은 드물다. 아무리 감투가 좋다고 한들 지성의 상징인 우리 총장님들이 학자적 양심과 자존심을 버리고 청와대 주변이나 기웃거린대서야 되겠는가. 권력 앞에만 서면 유난히 작아지는 우리 총장님들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다.
김중산/샌피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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