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연말연시가 되면 가장 예쁜 편지지를 골라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수신인 전진영, 발신인 전진영’. “나만 볼 거니까 뭐”하며 앞뒤 안 맞는 말들을 쏟아낸다. 지난 한해 잘 살았는지, 새해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각오를 줄줄이 써 내려간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계기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뀐다 해도 변치 말아야 할 소중한 나의 모습. 사회에 적응하고 타협하면서 바뀌는 모습에 회의를 느낀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곤 한다. 가치 있는 말과 행동,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 이상을 글로 적어서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시작한 것이 ‘내게 보내는 편지’다. 편지를 정성스레 쓰고 우표를 붙여 내 자신에게 부친다. 그리고 되돌아온 날짜가 찍힌 편지를 간직한다. 뜯어보고 싶은 날이 올 때까지. 가끔 편지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점차 의미가 희미해지더니 지난 몇 년은 의례적으로 편지를 쓰는데 급급해하지 않았나 싶다. 급기야 작년에는 컴퓨터로 편지를 작성해서 손 편지의 은은한 감동과 분위기를 날려 버렸다. 올해는 1월1일 편지를 시작 했는데 끝을 못 봤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써 넣고 편지를 마무리 짓는 일은 도저히 안 되겠다. 얼마 전 연말연시 대청소를 하다 자취를 감춰 버린 편지와 덤으로 다른 편지를 찾았다.
오래된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땐 이랬구나, 이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존재 였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순수했던 마음들, 지금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마음을 보여 주셨을까.
그래! 올해 으뜸가는 다짐은 소중한 분들께 연락하기로 하자.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셨던 그리운 분들께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해야겠다. 마음속에 쌓인 뭔가가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젠 편지를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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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영씨는 주재원으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1학년때 도미해 부모님과 언니가족은 시애틀에 살고 있고 혼자 베이지역에 살고 있다. UC 버클리 분자세포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생명공학 회사에 근무하다 지금은 동양인 건강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깊은 대화 나누기, 그리고 계획없이 떠도는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하는 전씨는 나름 우리 사회의 현실과 나아가야할 방향, 인권, 복지에 관심을 갖고 바람직한 시민이 되려 노력하는 보통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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