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당신은 자신의 죽음과도 직면하게 됩니다/ 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당신도 인식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들 것입니다/ 당신이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신념과 확신보다도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죽음이.
이 글은 랍비 얼 그롤먼의 잠언집에 있는 글이다.
삼년 전 여든 다섯 나이에 동갑내기였던 아내를 나는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내 아내 그리고 근래에 세상을 떠난 여러 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제까지 환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 사람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그를 떠난 보낸 이들에게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쓰라린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렇게 절기가 바뀌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쯤에는 더 더욱...
내 나이 여든 여덟. 이제 더 할 일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가에 앉아 보낸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 그리고 이제 칼바람이 부는 창밖의 모습을 보면서 삶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결국 소멸한다는 섭리를 실감한다.
우리의 육체는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고 자연 질서를 거부하거나 역행할 수 없다. 전에는 죽을 만큼 힘들고 대단하게 생각되던 어떤 일들이 지금은 하찮게 심드렁하게 기억 되는가 하면, 절대로란 욕심으로 붙잡고 있던 집착에서도 한참 자유스러워지고, 아주 친숙했던 내 주위의 풍경들이 왠지 낯설게 여겨지는 느낌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도 잘하고 싶다는 충동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옛날 어른들은 객사를 제일 불행하다 했고, 마루 밑에 널빤지를 준비해 놓고서 조금씩 준비해두는 죽음을 행이라 했다.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사랑을 더 많이 연습해 두고, 화해하는 편한 마음으로 평소의 삶에서 준비해 두지 않으면 한꺼번에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마무리가 힘들다고 한다.
삶은 시간적인 것과 더불어 아주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영원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 나는 믿고 싶다. 죽음은 단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삶의 관계로 연결되는 것이고, 죽음은 마지막이고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